2025/04 6

조가(曹家)의 여인(경봉스님 법문중에서)

오늘 단비가 내리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 모심기도 끝내고, 채소도 풍성하게 자라니 아난(阿難)이 합장(合掌)하고, 가섭(迦葉)이 눈썹을 날리는 시절이라 곧 영산회상 이로다. 선상(禪床)을 치면서 하시는 말씀이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하셨는데, 그 가운데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신 것, 하나만 알면 이것이 곧 구족다문(具足多聞)인 것이다. 이 법은 입을 열어 말과 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사(宗師)가 법상에 오르기 전에 법이 다 되었고 청중이 자리에 앉기 전에 법이 다 되었다. 이것이 곧 구족다문이다. 여기사 살펴보아야 선가(禪家)의 진진한 묘미(妙味)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진리 법문은 참으로 만나기 어렵고 들기가 어려운 것인데 한 번 들으면 마치 천년만년이나 어두운 ..

전삼삼 후삼삼 2(前三三 後三三 : 경봉스님 법문중에서)

그런 말은 모르겠기에 다시 동자에게 법문을 청하였다. “동자여 나를 위하여 법문을 해주세요”라고 청하자 동자가 법음을 들려주는데 面上無嗔供養具(면상무진공양구 : 얼굴에 화를 안내면 공양 거리요) 口程無嗔吐妙香(구정무진토묘향 : 입으로 화를 내지 않으면 묘한 향을 토함이요) 心內無嗔是珍寶(심내무진시진보 : 마음 가운데 성냄이 없으면 이것이 참 보배요) 無拓無梁卽眞常(무척무양즉진상 : 물듦과 때가 없으면 곧 항상 참됨이로다) 잠시 후 돌아다보니 절도 사람도 모두 홀연히 사라지고 그저 깊고 푸른 산중이었다. 아하, 그 노인이 바로 문수보살, 자신이 친견하려고 이 깊은 산간을 지극한 신심으로 찾아 헤매던 바로 문수보살이었건만, 지혜(智惠)의 눈이 열리지 못하여 봐도 보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였으니..

전삼삼 후삼삼 1(前三三 後三三 : 경봉스님 법문중에서)

開門今日看平野(개문금일군평야 : 문을 열어 평야를 바라보니) 四月南風大麥黃(사월남풍대맥황 : 사월 남풍에 보리는 누렇고) 燕子雙雙傳密語(연자쌍쌍전밀어 : 제비는 쌍쌍이 날아 밀어를 전하는데) 山高水碧萬花紅(산고수벽만화홍 : 산은 높고 물은 푸르러 오만가지 꽃이 향기롭네) 예전에 어느 선비가 제비들이 강남에서 날아와서 반가운 듯이 지저귀는 것을 보고 자문자답(自問自答)으로 지은 시(詩)다 燕燕來耶消息好(연연래야소식호 : 제비야 제비야 너 왔느냐 소식이 좋구나) 江南風景近如何(강남풍경근여하 : 강남의 풍경이 요즈음은 어떻니) 제비의 답이 作夜東風作夜雨(작야동풍작야우 : 어젯밤에 동풍 어젯밤 비에) 紅桃花發主人家(홍도화발주인가 : 붉은 복숭아꽃이 주인댁 뜰에 흐트러지게 피었습니다) 산이 평등..

신령스러운 광명 2(경봉스님 법문중에서)

그 자리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 그 자리에 걸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런 말은 천고에 듣기 힘든 말이다. 삼천여 년 전에 부처님이 말하였고, 모든 조사들이 말한 그 자리, 여러 수자들이 가지고 있는 당체, 그 자리를 오늘 내가 바로 말해 주는 것이다. 참된 성품이 물듬이 없는 것이 흡사 연꽃에다 똥물을 붓고, 청, 황, 적, 백, 흑의 온갖 색깔을 부어도 닿기는 닿지만 하나도 물들거나 묻지 않는다. 진흙에 박았다가 빼내도 조금도 흙이 묻거나 더럽혀지지 않듯이 우리의 참된 성품에는 모든 더러운 것을 묻히려 해도 묻힐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망상을 피우면 피웠지 이 자리는 외외낙낙(嵬嵬落落) 하여 조금도 어리댈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허망한 인연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니라. 그 의 스승이 ..

신령스러운 광명 1(경봉스님 법문중에서)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고는  雨過山靑(우과산청 : 비 개인 뒤 산빛이 새롭고)  春來花紅(춘래화홍 : 봄이 오니 꽃이 붉다)  帶月寒松(대월한송 : 달이 차가운 솔가지에 걸리고)  搖風庭栢(요풍정백 : 바람은 뜨락 잣나무를 흔드네)  비가 오기 전보다 비가 지나간 뒤의 산빛이 곱고, 봄이 오니 꽃만 붉은 것이 아니라 만물이 모두 봄빛을 띠어 찬연하다. 화가의 눈에도 산빛이 하루라도 몇 번씩 변하고, 바다 물빛도 몇 번이나 바뀐다. 바뀐다고 한다. 바람이 잣나무를 흔들고 달이 차가운 솔가지에 걸려 있는 풍광을, 잘 아는 것이지만, 부처님의 진리 법문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누었던 주장자를 여러분들에게 보이고 법상을 세 번 쳤는데, 이것이 법문이다. ..

봄소리(경봉스님 법문중에서)

우리가 알려고 하는 이 자리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일체 상대적인 것이 떨어진 자리이다. 계절은 춘삼월 호시절이라 우주에 춘광이 도래하여 시냇물은 잔잔히 흘러가고 꽃은 웃고 있고 새는 우짖는데, 선창(蟬窓)에 일주청향(一炷淸香)의 노연(爐煙)은 우리 집의 묘한 풍광이고 곧 다함없는 진리이다. 봄이 오니 새 우는 소리도 봄에 우는 소리가 다르다.  겨울에는 추워서 근근이 움츠리는 소리로 우는데 봄에는 아주 활발한 활짝 핀 울음소리다. 물은 잔잔히 흘러가고 산꽃은 웃고 들새들이 노래하는 여기에 법문이 있다. 법문은 법사의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이 모두 법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聲前眉語傳(성전미어전) : 말하기 전에 눈썹말을 전하고  黙然眼微笑(묵연안미소) : 묵연히 눈으로 미소를 짓네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