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혜/경봉스님

신령스러운 광명 2(경봉스님 법문중에서)

산울림(능인원) 2025. 4. 15. 17:46

  그 자리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 그 자리에 걸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런 말은 천고에 듣기 힘든 말이다. 삼천여 년 전에 부처님이 말하였고, 모든 조사들이 말한 그 자리, 여러 수자들이 가지고 있는 당체, 그 자리를 오늘 내가 바로 말해 주는 것이다. 참된 성품이 물듬이 없는 것이 흡사 연꽃에다 똥물을 붓고, 청, 황, 적, 백, 흑의 온갖 색깔을 부어도 닿기는 닿지만 하나도 물들거나 묻지 않는다.

  진흙에 박았다가 빼내도 조금도 흙이 묻거나 더럽혀지지 않듯이 우리의 참된 성품에는 모든 더러운 것을 묻히려 해도 묻힐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망상을 피우면 피웠지 이 자리는 외외낙낙(嵬嵬落落) 하여 조금도 어리댈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허망한 인연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니라.

  그 의 스승이 이 말에 깨닫고 말하기를 “그늘막에 이런 설법을 들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선사가 나중에 고령사에 가서 대중을 교화하기 몇 해만에 임종이 가까워지니 머리를 깎고 목욕을 하고 종을 쳐 대중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소리 없는 삼매(三昧)를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대들은 조용히 들어라, 모든 생각을 비우고.....” 대중이 모두 선사의 무성삼매(無聲三昧)를 들으려고 귀를 귀우리고 있는데, 선사는 엄숙히, 그리고 조용히 입적하였다. 그 후 본산에 탑을 세웠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일천 육백 년 전이다. 신라는 법흥왕 때부터 불교가 흥왕하였는데 법흥왕, 박염촉(이차돈은 박염촉의 방언임), 원효대사. 이 세 분을 신라불교의 삼성(三聖)이라 한다. 법흥왕이 불교를 흥왕 시키고 천경림 숲을 베어서 절을 짓고 불교를 펴려고 하니, 만조백관들이 모두 안된다고 왕에게 간하였다. 왕이 탄식하기를 “과인이 덕이 없어서 불보(佛寶)를 삼가 모시려고 하는데, 백성들이 불안하게 여기고 신하들이 따르지 않으니, 누가 능히 나를 위해서 묘법(妙法)으로 미혹한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느냐!” 그때에 사인(舍人) 벼슬을 하며 매우 사랑을 받던 총신, 이차돈이 곁에 있다가 “청컨대 소신을 참(斬) 하시어 중의(衆議)를 정하소서” “불도를 흥왕 하고자 하거늘 저버리지 않을 자를 먼저 죽임이 옳겠는가?” “큰 성인의 교(敎)는 천신(天神)이 받들어 행하는 바라, 소신을 먼저 참하시면 하늘과 땅에 이변(異變_)이 생기리니 누가 감히 이기리오. 몸을 바쳐 어짐(임금의 뜻)을 세우는 것은 신하의 큰 절개이온데, 하물며 부처님의 태양이 항상 밝고 폐하의 도모하심이 길이 번성하면 비록 죽는 날이라도 오히려 사는 날이 될 것이 오다.”

  왕이 크게 찬탄하고 찬성하여 신하들을 모아서 의논하니, 첨신(僉臣)이 말하기를 “승도(僧徒)들은 머리를 깎고 이상한 행색으로 의론이 기이하니, 그를 따르면 후회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이차돈이 말하기를 “무릇 비상한 사람이 있어야 비상한 일이 있나니(夫非常人有, 然後非常事有), 이제 불교는 깊고 깊어서 불가를 믿어야 하나이다.” 왕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돌이킬 수가 없노라.” 하고 이차돈을 참하게 하였다.

  이차돈이 형장에 다 달아서 서원을 말하기를 “불교가 나라에 복되고 백성에 이로우면 내 목에서 흰 젖이 나올 것이고, 만약 나라와 백성에게 해가 될 것 같으면 피가 올라오리니, 이것으로 증명하리라.” 하더니 이에 목을 베니 목은 허공에 솟아 멀리 백률사(栢栗寺)에 날아가 떨어지고, 목에서 흰 젖이 솟아올라 수십 길이나 뻗치고, 태양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하늘에서 묘한 꽃비가 내리며 땅은 크게 진동하였다.

  그 후부터는 신라불교가 크게 흥왕 하여 집집마다 부처님께 예불하고, 사람마다 도를 행하며, 이차돈을 위하여 절을 짓고 절 이름을 법추사(법楸寺 )라 하였다. 이때부터 불교를 국교로 하여 찬란한 우리 민족의 자랑인 신라 문화가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고려 때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도 이차돈의 순교를 추모하여 그의 사당에 와서 읊기를

   千里南來問舍人(천리남래문사인)

   靑山獨立幾經春(청산독립기경춘)

  若逢末世難行法(야봉말세난행법)

  我亦如君不惜身(아역여군불석신)

  님을 찾아 남행 천리 왔건만

  아득한 청산만 쓸쓸히 바라보며 지내기 몇 해 이러뇨

  만약 말세에 법을 행하기 어려움을 만나면

   나 또한 님과 같이 몸 바치리다.

  원효스님이 도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불교가 이 땅에 전해 온 중국으로 의상스님과 함께 유학하러 가던 중, 요동 땅에서 날은 저물었는데 숙박할 집이 없어서 옛 무덤을 집인 줄 알고 들어가 자다가 목이 어찌나 마르던지 물을 찾다가 무슨 그릇인지 그릇에 물이 담겨 있기에 마시니 시원하였다. 이튿날 일어나 보니 자기가 먹은 물이 사람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 어찌나 역하였던지 자꾸 토하다가 홀연히 깨달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 어젯밤에는 모르고 먹어서 시원하였는데, 오늘날이 새고 보니 사람 해골의 물이구나 하고 분별을 하자 구토질이 나오니, 즉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모든 법이 멸하는 것이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인식(認識)이라, 마음 밖에 법이 따로 없으니 어찌 특별히 구할 것인가.” 그러니 마음이 나고 멸하는 것이 이 참 마음 자체에서 자리가 나고 멸하는 것이 아니다. 망상이 나고 멸하고 하는 것이다.

  원효스님은 “나는 여기서 도를 알았으니 당나라에까지 갈 필요가 없다.”하고는 본국으로 돌아왔다.. 원효스님이 저술한 책이 천여권에 달했다. 저술만 한 것이 아니라, 신라 방방 곡곡에 다니면서 불교를 전도하였는데, 작은 장삼을 입고 주장자를 짚고 행각승으로 나서서 길을 가다가 선비를 만나면 선비에게 맞게 설법을 해주고, 농부들에게는 농부에 알맞게, 아이에게는 아이에 알맞은 법문을 해주고, 어른은 어른에게, 무식한 이에게는 무식한대로, 여자에게는 여자에 필요한 법문을 해주었는데, 만나는대로 감화를 시키며 다녔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에게는 동요를 들려주었는데, 천진난만한 조그만 아이들에게 어려운 말로 진리를 말해 주어야 모를 터라 노래 말을 지어 주었다.

  중아 중아 니 칼 내라 뱀 잡아 회치고

  개구리 잡아 탕 하고 찔래 꺾어 밥하고

  니 한 그릇 내 한 그릇 평등하게 나누어 먹고

  알랑달랑 놀아 보세 알랑달랑 놀아 보세

  아이들이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좋다고 웃고 노는데, 그 동요가 사실은 진리의 말이다. 중아 니 칼 내라, 사람마다 지혜의 칼이 있는데 수도하는 사람의 칼이니 무엇이든지 잘 드는 보검이다. 찔래 꺾어 밥 한다는 말은, 진리로 밥을 한다는 말이다. 개구리 잡아 탕(湯) 한다는 것은 개오리(開悟理) 즉 모두 깨닫는 이치로 탕을 하고, 뱀을 회친다는 말은, 뱀을 사사(四蛇)라고 하는데, 우리 몸이 흙(地,), 물(水), 불(火), 바람(風) 등 네 가지 기운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네 가지가 마치 모진 뱀과 같으니, 이것이 몸 가운데 부족하든지 많든 지 하면 몸에 병이 나서 사람을 고생시키니 이것을 조복 받고 다스려서 회를 쳐서, 니 한 그릇 내 한 그릇 아이나 어른이나 평등하게 한 그릇씩 먹고는, 알랑달랑 놀아 보자는데, 이 알랑달랑 이것이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마하반야 바라밀다 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인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아이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좋아라 한다.

  원효스님의 그 방대한 저술과 도덕과 깊고도 심원한 학문은 그 당시에 벌써 동양 삼국에 이름을 떨쳤고 멀리 인도의 용수, 마영보살(龍樹, 馬鳴菩薩)에나 비교할 수 있다면 있을까. 하여튼 초기의 신라불교를 방방 곡곡에 편 분이다.

靑綠萬枝紅一點(청록만지홍일점)

動人春色不須多(동인춘색불수다)

울창한 푸른 숲에 붉은 꽃 한 송이여

봄빛이 사람을 동하게 하는 것은 많은 것이 아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