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국은 흔히 생소한 나라의 이름으로 들린다. 그러나 조문국 또는 소문국(召文國)은 삼국시대에 현재의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존재했던 진한계 부족국가이다. 185년 신라에 병합되어 문소 (聞韶郡)이 되었고 고대대에 이르러 현재의 이름인 인성이 되었다. 문헌 사료가 아주 적은 편이어서 이 나라의 실상은 거의 알 수 없으나 고고학 발굴자료는 풍성한 편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이(卷二) 신라본기(新羅本紀) 제이(第二) 벌휴이사금(伐休尼師今)조에 「二年 春正月 親祀始祖廟 大赦 二月 拜波珍飡 仇道 一吉飡 仇須兮 爲左右軍主 伐召文國 軍主之名始於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벌휴이사금 2년, 1월에 왕이 친히 시조사당에 제사 지내고 죄수를 크게 사면했으며 2월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로서 좌우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정벌했는데 군주라는 이름이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벌휴이사금은 신라 99대 왕으로 동왕 2년은 서기 185년에 해당되므로 조문국이 신라에 복속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8301830여 년 전의 일이다. 의성군 금성면이 조문국 도읍지로 지금까지 규모가 매우 큰 100 여기 등 모두 374 여기(2015.4 의성 금성산고분군 일원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의 고분군(古墳群)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최소한 몇 세기에 걸친 족적(足蹟)이라 짐작되므로 삼한의 초기부터 존재하던 부족국가라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1960년 11월 국립박물관(김재원 박사팀)에서 거대한 조문국 고분 1기를 발굴 (금동관 등 다수유물 발견) 조사하여 당시 상황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조문국 사적지를 방문하여 풍성하게 피운 작약꽃을 둘러보았는데 몇 년 전 이곳을 방문해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니 지방문화재의 보존이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아 흡족한 마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