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하면 우선 왕실의 무덤지로 알려진 고군분들이 모여 있는 봉황로 일대이다. 그중에서도 천마총은 제155호 고분이라고 불려왔으나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 의한 발굴조사 결과 무덤 안에서 자작나무껍질에 채색으로 천마(天馬)를 그린 말다래[障泥:국보 제207호]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고 명명되었다. 거대한 봉토로 덮인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서 봉토의 바닥지름은 47m, 높이는 12.7m에 달한다. 무덤의 축조방법은 먼저 지면을 고른 뒤 바깥둘레돌[外護石]을 돌리고 그 안에 점토와 자갈을 다져쌓기[版築]해서 올린 후 여기에 덧널[木槨]을 동서방향으로 설치하고 덧널 주위에 돌무지를 쌓은 뒤 봉토를 씌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인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와 유사하며 다만 덧널이 지면보다 위에 있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덧널 위와 주변에는 지름 23.6m, 높이 7.5m 가량 돌을 쌓고 표면에는 방수를 목적으로 점토를 발랐다. 덧널 내부에는 강돌과 잔자갈로 석단(石壇)을 돌리고 그 위에는 유물을 배열했으며 석단의 내부에 길이 215cm, 너비 80cm 가량의 널[木棺]을 덧널의 장축방향에 맞추어 동서방향으로 안치했다. 석단의 바깥쪽에는 널과 직교하여 남북방향으로 껴묻거리 상자를 놓았다.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는 6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껴묻거리는 위치에 따라 봉토 내부, 덧널 상부, 널 주위의 석단 윗면, 널 내부, 껴묻거리 상자 등으로 구분된다. 봉토 내부의 유물로는 정상부 근처에서 마구류로 추정되는 금동판(金銅板)·미늘쇠[有刺利器]·쇠낫[鐵鎌]·쇠투겁창[鐵]·유리구슬[琉璃玉] 등이 출토되었다. 덧널 상부 출토유물로는 쇠도끼[鐵斧]와 굽다리접시[高杯]·뚜껑접시[蓋杯]·목단지[長頸壺]·단지[短頸壺] 등의 토기류, 금제 굵은고리, 가는고리귀걸이, 유리구슬 등과 대형환두철봉(大形丸頭鐵棒)·환형철구(環形鐵具) 등이 있다. 널 주위의 석단에는 동쪽에 관모·허리띠[帶]·띠드리개[腰佩] 등의 장신구류, 나머지 부분에는 무기와 마구류가 부장되어 있었다. 널 내부에는 금관, 목걸이[頸飾], 금제허리띠[金製帶]와 띠드리개, 금제·은제 팔찌, 금제반지, 봉황환두대도(鳳凰環頭大刀) 등을 패용, 착용한 인물이 머리를 동쪽으로 향한 채 반듯이 눕혀져 있었다. 껴묻거리 상자에는 다량의 유물이 들어 있었는데 뚜껑으로 생각되는 판재의 윗면에는 금제새날개모양관장식[金製鳥翼形冠飾]·금박편(金箔片)·금동관·금동제관모·금동제정강이가리개[金銅製脛甲]등이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서는 재갈[轡]·발걸이[鐙子]·말띠드리개[杏葉]·밑동쇠[座金具]·말띠꾸미개[雲珠]·청동말종방울[靑銅馬鐸]·안장틀[鞍橋]·말다래 등의 각종 마구류와 투구 1점이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세발솥[鼎], 자루솥[鐎斗], 다리미, 크고 작은 합(盒), 굽다리접시 등의 금속제용기와 유리용기, 각종 칠기류가 빽빽이 차 있었다. 상자 아랫면은 4점의 쇠솥[鐵釜]이 받치고 있으며 쇠솥이 없는 곳에는 각종 토기류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제155호 고분이라고 불려왔으나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 의한 발굴조사 결과 무덤 안에서 자작나무껍질에 채색으로 천마(天馬)를 그린 말다래[障泥:국보 제207호]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고 명명되었다. 거대한 봉토로 덮인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서 봉토의 바닥지름은 47m, 높이는 12.7m에 달한다. 무덤의 축조방법은 먼저 지면을 고른 뒤 바깥둘레돌[外護石]을 돌리고 그 안에 점토와 자갈을 다져쌓기[版築]해서 올린 후 여기에 덧널[木槨]을 동서방향으로 설치하고 덧널 주위에 돌무지를 쌓은 뒤 봉토를 씌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인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와 유사하며 다만 덧널이 지면보다 위에 있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덧널 위와 주변에는 지름 23.6m, 높이 7.5m 가량 돌을 쌓고 표면에는 방수를 목적으로 점토를 발랐다. 덧널 내부에는 강돌과 잔자갈로 석단(石壇)을 돌리고 그 위에는 유물을 배열했으며 석단의 내부에 길이 215cm, 너비 80cm 가량의 널[木棺]을 덧널의 장축방향에 맞추어 동서방향으로 안치했다. 석단의 바깥쪽에는 널과 직교하여 남북방향으로 껴묻거리 상자를 놓았다.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는 6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껴묻거리는 위치에 따라 봉토 내부, 덧널 상부, 널 주위의 석단 윗면, 널 내부, 껴묻거리 상자 등으로 구분된다. 봉토 내부의 유물로는 정상부 근처에서 마구류로 추정되는 금동판(金銅板)·미늘쇠[有刺利器]·쇠낫[鐵鎌]·쇠투겁창[鐵]·유리구슬[琉璃玉] 등이 출토되었다. 덧널 상부 출토유물로는 쇠도끼[鐵斧]와 굽다리접시[高杯]·뚜껑접시[蓋杯]·목단지[長頸壺]·단지[短頸壺] 등의 토기류, 금제 굵은고리, 가는고리귀걸이, 유리구슬 등과 대형환두철봉(大形丸頭鐵棒)·환형철구(環形鐵具) 등이 있다. 널 주위의 석단에는 동쪽에 관모·허리띠[帶]·띠드리개[腰佩] 등의 장신구류, 나머지 부분에는 무기와 마구류가 부장되어 있었다. 널 내부에는 금관, 목걸이[頸飾], 금제허리띠[金製帶]와 띠드리개, 금제·은제 팔찌, 금제반지, 봉황환두대도(鳳凰環頭大刀) 등을 패용, 착용한 인물이 머리를 동쪽으로 향한 채 반듯이 눕혀져 있었다. 껴묻거리 상자에는 다량의 유물이 들어 있었는데 뚜껑으로 생각되는 판재의 윗면에는 금제새날개모양관장식[金製鳥翼形冠飾]·금박편(金箔片)·금동관·금동제관모·금동제정강이가리개[金銅製脛甲]등이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서는 재갈[轡]·발걸이[鐙子]·말띠드리개[杏葉]·밑동쇠[座金具]·말띠꾸미개[雲珠]·청동말종방울[靑銅馬鐸]·안장틀[鞍橋]·말다래 등의 각종 마구류와 투구 1점이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세발솥[鼎], 자루솥[鐎斗], 다리미, 크고 작은 합(盒), 굽다리접시 등의 금속제용기와 유리용기, 각종 칠기류가 빽빽이 차 있었다. 상자 아랫면은 4점의 쇠솥[鐵釜]이 받치고 있으며 쇠솥이 없는 곳에는 각종 토기류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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