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마당/내 이야기

자식이 아니다(不子)

산울림(능인원) 2024. 5. 17. 10:00

 

  우리는 한정된 삶의 시간 속에서, 우리를 싸고 있는 커다란 공간 속에서 나름대로의 공간을 얻어가고 있다. 이 속에는 수없는 공간(즉 남편의 공간, 아내의 공간, 자식의 공간, 육친권속의 공간, 재물, 명예 등의 오욕락의 공간, 희로애락 등 감정의 공간 등)이 있다. 내 마음에 털끝만 한 쌓임이라도 있다면 바로 여기에 걸려서 넘어지게 된다.

  돈을 많이 벌면 좋다. 남편이 출세하면 좋다, 아내가 커리어 우먼이 좋다,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면 좋다는 것은 다 아는데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출세하고 어떻게 내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는가를 모르면 좋다는 것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떠나 바로 알기 위해선 내가 현재 알고 있는 것만 버리면 된다.

  모르는 데도 자기가 아는 것 속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기가 아는 것을 통해서도 안될 때는 이제 그만 자기가 아는 것을 버리고 새것을 얻을 준비를 해야 된다. 분명한 내 아버지가 내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어떻게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니라고 볼 것인가?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면 자식도 자식이 아니니 내가 바로 자식이 아닌 것이다. 이는 마치 경찰이 도둑질을 하면 경찰도 도둑놈이 되는 것처럼 내 아버지가 나에게 하는 것이 어떠하든 그 일에 관계없이 내가 자식의 도리를 못하면 우선 나부터 자식이 아닌 불자(不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살이에서는 자식이 아니라고는 하지 않고 대신 부모 섬기는 일을 잘못했다고 불효자(不孝子)라고 한다. 그러나 이 불효자가 바로 불자(不子)가 되는 것이다.

 

  부모를 섬길 때 부모 형태와 상황에 따라 또는 나의 비위에 맞춰서 자식의 도리를 정한다면 이 또한 모순이 되는 것이다. 자식의 도리는 부모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식 것이기 때문에 부모의 상황과 그들에 대한 감정을 떠나야만 내가 영원한 자식이 될 것이며 또 아버지가 영원한 아버지가 되어 윤회하면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아들이 아버지를 찾는 고달픈 인생길을 벗어날 수가 있다.

 

  이처럼 모든 일은 서로서로가 미혹해서 업을 쌓고 맞부딪치면서 일어나게 되니 인간 살림도 물질 살림도 정신 살림도 스스로 짖고 스스로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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