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劍爲不平離寶匣(검위불평이보갑 : 칼은 불평을 다스리려 보갑에서 나오고)
藥因救病出金甁(약인구병출금병 : 약은 병을 다스리려 금병에서 나온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다 있는 것을 모르니까 말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말하는 그 속에는 허물이 적지 않게 포함된다. 법문을 듣고 수행하는 것은 모두가 참된 마음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본래 열 살 되기 이전에는 참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차차 자라면서 욕심이 생기고 애착과 망상이 생겨서 그 참된 마음을 변하게 한다.
산이 항상 푸르게 보이지만 화가가 보면 푸르기만 산도 빛이 변하여 다르게 보인다. 바닷물도 푸르지만 화가가 자주 보면 볼 때마다 물빛이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그것은 변하지 않은 물건이 변하게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이 마음이라는 것 즉 진심(眞心)이라고 해도 역시 병통(病痛)이다.
참된 마음이 있고 나쁜 마음이 있을 수 있는가. 말을 하자니 진심이니 망상 심이니 하고 표현을 빌렸을 뿐이다. 그러니 이 자리는 본래 일체 이름과 형상이 다 떨어진 그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그렇게 청정할 수 없는 그 자리를 망상분별의 파도를 일으켜 놓은 것이다.
법문을 듣고 수행하는 것은 본래 청정한 그 진심자리를 알려고 하는 것이다. 이 몸을 끌고 다니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마음이다. 마음이 어떤 것이냐. 그것을 마음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이 소소령령(昭昭靈靈)한 이 자리는 마음도 아니요 부처자리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진심이라고 하며 그 참된 마음을 진령감(眞靈鑑)이라고 하는데 참되고 신령하기 그지없는 거울과 같다는 말이다.
보살계경(菩薩戒經)에는 이 소소령령한 것을 심지(心地)라 한다. 즉 마음의 땅이니 또 만선(萬善)이라 하는데 온갖 착한 것을 심지에서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능엄경(楞嚴經)에는 차심발명(此心發明)이라고 하였으니 이 마음을 발명한다는 말이고 이 마음이란 곧 진심이니 망상 없는 마음이며, 반야경(般若經)에는 보리(菩提)라 하는데 깨닫는 것을 더불어서 당체(當體)가 되었다는 말이며, 화엄경(華嚴經)에는 이 마음자리를 일법계(一法界)라 하였으니 이 말은 모든 것을 사무치고 원륭히 거두며 여여(如如)하여 항상 참되고 변치 않는다는 말이다.
열반경(涅槃經)에는 불성(佛性)이라 하였으니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의 삼신(三身)의 근본처를 말함이며, 원각경(圓覺經)에는 총지(總持)이라 하였으니 모든 것을 다 가져 숨기고 덮으며 모든 것을 함(含)하고 포섭하는 까닭이며, 승만경(勝鬘經)에는 여래장(如來藏)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부처님의 십호(十號)인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명행족(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요의경(了義經)에는 원각(圓覺)이라 하였으니 뚜렷이 깨달아 어두움을 파하여 홀로 비추는 것을 말함이다. 조사문하(祖師門下)에 들어오면 모든 이름과 말을 두절해서 한 이름도 세우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이름을 말하겠는가. 다만 중생들에게 알맞게 설법한다.
이 소소령령(昭昭靈靈)한 자리를 자기라 하기도 하고 혹은 모든 중생들의 근본성품이라 하기도 한다. 흔히들 이 몸이 자기인 줄 알지만 이 몸은 이론적으로 과학적으로 아무리 따져봐도 역시 부모의 물건인 것이다.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이 진아(眞我)에는 일체명사가 다 떨어졌다. 다 떨어졌지만 어떤 때에는 묘심(妙心)이라 하는데 마음이 비고 영령 하여 항상 적적한 것을 주인첨지라고도 한다.
어떤 때에는 무저발(無低鉢)이라 하니 말이 있어야 할 발우가 밑이 빠져버렸다는 말이다. 혹은 몰현금(沒絃琴)이니 줄 없는 거문고에서 운율이 난다는 뜻이다.
어떤 때에는 정안감(正眼鑑)이라 한다. 바른 눈으로 거울처럼 비추는 것을 말한다. 사람마다 얼굴에 바를 정(正) 자를 써 붙이고 다니면서 마음은 언제나 삐뚤게 쓴다. 왜 바를 정자인가 하면 눈이 한 일자처럼 옆으로 그어져 있고 그다음에는 코가 내려 붙였고 또 입과 귀 붙은 것이 꼭 그칠지(止) 자처럼 되었으니 바를 정자인 것이다.
어떤 때에는 무진등(無盡燈)이라 한다. 다함이 없는 등불, 그 등불은 암흑한 미정(迷情)을 밝혀주며 인류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여 주는 세간등(世間燈)인 것이다. 그 등불을 불불조조(佛佛祖祖)로 계승하여 미래제(未來際)가 다함이 없기 때문에 무진등이라 한다.
어떤 때에는 취모검(吹毛劒)이라 하는데 이 취모검이란 말은 보검이니 털을 칼 위에 놓고 입으로 불면 털이 날아가기 때문에 취보검이라 한다. 이 지혜로운 칼이 모든 번뇌를 끊어준다.
이 자리를 니우(泥牛)·목마(木馬)·심인(心印)·심경(心鏡)·심월(心月)·심주(心珠) 등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이 많이 있으니 이루 다 열거할 수가 없는데 중생들이 본래 청청한 이 자성 자리를 매각(昧却)했다. 수행을 하려는 것은 본래 밝고 청정한 이 자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예전에 어느 선비가 돈을 두고 지은 글이 있다.
區求壯士終無力(구구장사종무력 : 구구히 구하려 하면 장사라도 힘으로 구할 수 없고)
善用愚夫必有名(선용우부필유명 : 돈은 좋은데 쓰면 어리석은 이라도 유명하게 된다)
富恐失財貧願得(부공실재빈원득 : 부자가 돈이 나갈까 걱정 가난뱅이는 벌려고 애를 쓰니)
人間白髮此錢成(인간백발차전성 : 인간의 백발을 돈이 들어 만드네)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잘 탔는데 백아의 거문고를 아는 이는 오직 그의 친구 자기(子期) 뿐이었다. 산수곡을 타면 산수곡인 줄 알고 또 그 어떤 곡을 타도 그 곡이 무슨 곡인 줄 잘 알아 들었다. 자기가 죽은 뒤에 백아가 탄식하며 거문고를 부수었다. 아는 이가 없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지음자(知音者)가 있어야 한다.
진심(眞心)의 오묘한 당체(當體)는 온갖 곳에 두루해 있다. 망령된 마음만 쉬면 곧 진심이 나타나니 진심의 당체에 옛 조사 스님이 말씀하기를 “당체를 조금도 여의지 않고 항상 담연(湛然) 하나 그대가 찾으려 하면 볼 수가 없는 것”이라 하셨다.
그 자리를 조금도 여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정확하게 바로 보면 되는 것을 밖을 향해 찾으려고 하니 답답한 일이다.
경(經)에 이르기를 “허공성리(虛空性理)이기 때문에 항상 움직이지 않으며 일상생활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御墨動靜)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이 소소령령한 이 자리는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항상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은 부동(不動)하여야 하고 그런 자세로 법문을 듣고 수행을 해서 마음을 단련하여 삼매의 경지에 들어야 한다.
여래장(如來藏) 가운데에는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없다. 여래는 마음자리 즉 온 것 같으면서 온 것이 아니요 간 것 같으면서 간 것이 아닌 이것을 여래라 한다.
處處菩提路(처처보리로 : 어디든지 깨닫는 길이요)
頭頭功德林(두두공덕림 : 온갖 것이 공덕의 숲이로다)
이 마음자리를 통하지 않는 데가 없고 또 그 당체의 소재(所在)도 없는 것이다. 참된 마음 오묘하고 신령스러운 자리는 수감지연(受感之緣)이니 느낌을 따라 곧 드러나는 것이다. 저 깊은 산골짜기에서 큰소리로 “태산아”하고 부르면 메아리쳐 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어디든 여윈 곳이 없고 그 자리에 있어서 목전(目前)에 두루한 것이다.
片雲生晩客(편운생만객 : 조각구름 느지막이 골짜기에 피어오르면)
孤鶴下遠天(고학하원천 : 외로운 학은 먼 하늘에서 내려오네)
화엄경(華嚴經)에 이르기를 불법(佛法)은 제일용처(第一用處)라 항상 다니며·머물며·앉고·눕고·차 먹고·밥 먹고·서로 말을 주고받는, 그곳에 법이 있는 것이다. 이렇다 하더라도 그 자리를 완전히 드러내어서 이것이 옳은 것이라고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마음자리를 금과 물과 해와 또한 달과 허공 등 온갖 것에 비유하더라도 부득이해서 비유하는 것이지 그 상대가 끓어진 것이라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가 없다. 눈앞에 불법이 있건만 눈이 멀고 귀가 어두워서 발견하여 들을 수가 없다. 어느 것이고 불법 아님이 없음이니 잘 이해하여 활용하여야 한다.
허공에 전기 전자는 나무에도 통하고 몸에도 통하고 삼라만상에 다 통해 있듯이 이 불법의 진리도 마찬가지이니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좀 더 가까운 우리의 주변에서 이 진리를 추구하여야 한다. 습관은 제 이의 천성이니 비유하자면 사기로 그릇도 만들고 물통과 요강도 만드는데 한 번도 사용하지 않던 것이라 하더라도 밥을 담아서 먹는데 다른 그릇에서 담아 먹어도 요강에 담은 음식은 먹을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누가 세수한 물에 세수하라고 하면 화를 내면서 목욕을 하는데 머리로부터 온몸을 다 씻은 물에 목욕을 하라고 하면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머리와 몸을 씻고 나오면서 목욕 잘했다고 하니 이것을 보고 습관은 제 이의 천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전해오는 야담(野談)에 어떤 이가 염라대왕의 사자에게 잡혀갔는데 염라대왕이 말하기를 “너는 세상에서 무엇을 하였나?”라고 묻자 그 자는 “네 장가들고 아들 딸 낳고 살림하고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였습니다.”라고 답하자 염라대왕은 “네 이놈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남을 위해서 좋은 일 한 것을 말해봐라.”라고 하자 그 사람은 “죽을 줄 생각했으면 어떠한 좋은 일이라도 많이 했을 텐데 이렇게 빨리 죽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라고 답변하자 “몰랐다고? 너의 겁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 성한 이가 빠지고 밝은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가고 하는 것이 여러 차례 염라대왕의 소식을 알리는 것인데 모르다니 네 이놈, 이놈을 옥에 가두었다가 나쁜 곳으로 보내거라”라고 하였다 한다.
欲知前生事(욕지전생사 :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今生受者是(금생수자시 : 금생의 받는 이것이요)
慾知來生事(욕지래생사 : 내생의 일을 알려면)
今生作者是(금생작자시 : 금생에 내가 하고 있는 이것이네)
누구나 향상(向上)하려고 하는 것은 생리적인 소원이니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뉘우치고 반성하고 또 시간을 아껴가며 진실을 추구하고 법문도 열심히 들으며 마치 저 태양이 한 점에 구름이라도 끼면 밝지 못하듯이 내 마음 가운데 어두움이 있으면 밝은 지혜로 비추어서 멋들어지게 살아야 한다.
水窮山盡疑無路(수궁산진의무로 :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하여 길이 없는가 의심하였더니)
柳綠花紅又一村(유록화홍우일촌 : 버들이 푸르고 꽃이 붉은 또 한 마을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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