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마당/내 이야기

자기 마음을 항복 받으려면

산울림(능인원) 2024. 10. 21. 15:42

  금강경에 무위복승(無爲福勝)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으로 중생을 위해 짓는 복이 제일 거룩하고 비교할 수도 없이 크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보시하고 아무리 훌륭한 생활을 하게끔 도와주었더라도 그것은 다함이 있는 것이며 얼마 아니 가서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 마음자리의 극히 일부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또 마음이 물질에 머무는 한 그것은 생사심이고 중생의 세계이므로 이는 참다운 복이라 할 수 없다. 우리의 본 성품은 이와 같은 물질적 현상을 다 초월한 번뇌 망상의 세계로부터 영원불멸의 진리의 세계로 나가고 생사윤회의 고통으로부터 열반의 광명세계로 중생을 인도하여 마침내 나고 죽는 문제를 해결하고 우주의 주인공으로서 대자유인이 되도록 하는 이 금강경의 진리를 남에게 가르쳐 주는 공덕은 어떤 물질적 보시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난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물으셨다. “수보리야, 항하(恒河)에 있는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 항하강이 있다고 하고 다시 그 많은 항아강 속에 있는 모래알은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답하기를 “심히 많겠나이다. 항하강의 수도 무한정 많겠거늘 그 속에 있는 모래이겠습니까.” 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길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이 금강경 가운데 네 구절(사구계)만이라도 받아 가져가서 남을 위해 해설해 준다면 그 복덕은 앞에서 말한 항하강 속에 있는 모래알 수만큼이나 많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칠보(七寶)로 가득 채원서 보시한 공덕보타 더 큰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사구계(예로서) 1)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若見諸相) 비상(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 2)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基心) 3)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십도(是人行什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등이다. 보살은 육도만행을 해도 무심으로 하고 일하는 것 없이 일을 하고 보고 듣는 바 없이 듣는다. 남에게 이정법을 해설해 주는 것이 진실로 그 사람을 영원히 도와주는 것이고 마지막 복과 지혜를 성취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물질로 목숨을 수없이 버려서 보시한다. 하더라도 이 경에 대하여 잘 일러주어 마음에 간직하게 한 것만 못하다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반야경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공덕 즉 사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떨쳐버리는 공덕은 어떤 물질적 비유로도 당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이다. 사상(四相)을 떠나면 세상이 망하거나 흥하거나 돈이 있거나 없거나 눈이 아파지거나 팔다리가 짧아지고 결국 죽는다. 하더라도 다 편안하기만 하다. 이것이 해탈인 것이다. 단 걱정이 있다면 중생제도를 하는 걱정뿐이다.

  부처님 당시에 사리불 존자가 공부하고 앉아 계시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부처님 제자 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 ”그러면 무엇이든지 다 보시할 수 있습니까? “ ”네 그렇습니다. “스님의 왼쪽 눈이 필요한데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이에 사리불 존자는 자기 스스로 왼쪽 눈을 빼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눈을 주었는데 눈을 받은 사람은 더럽다고 침을 탁탁 뱉고 땅에 던지고 발로 비비고 이겨서 못쓰게 만든다. 남은 애써 아픈 눈을 빼줬는데 필요 없으면 가져가 안 보이는 데서 버리던지 할 것이지 달라해 놓고 주니까 눈앞에서 그러니 아무리 부처님 제자이지만 마음이 동해서 속으로 고약한 놈이라고 꾸짖게 된다. 그랬더니 그 사람 하는 말이 “아, 스님 발심이 덜 되었습니다.  철저히 발심해서 상(相)이 없어졌다면 내가 눈을 갖다가 화장실에 넣거나 발로 밟아 버리거나 주는 것뿐일 것이데.  무심해야 할 것 아닙니까.”하면서 자기는 하늘에 제석천왕이라고 하면서 본모습을 나타내면서 “죄송합니다. 사실 나는 그것도 못합니다.”라고 사과하고 사라졌다 한다.

  우리가 아직 깨닫기 전이라도 이런 설법을 듣고 마음의 조복(調伏)을 받고 항복받는 법을 익혀 나가면 자기 눈을 못 빼준다 해도 목숨을 버리지 못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참회가 되어 진실하고 중노릇할 수 있고 인욕도 하고 보시도 모두 잘할 줄 알면 깨우친 뒤에 훨씬 수월해지는 것이다.

  불경을 하루에 10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부끄러운 생각이 나고 꼭 말씀대로 해야 되겠다고 다짐해야 될 것이다. 길 가다가 개가 나를 보고 짖어도 부끄러운 생각을 내고 참회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진전되어 나가면 오늘은 안되어도 다음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법문을 듣거나 경을 읽을 때만 이해하고 반성하며 후에는 잊어버리고 참회 생활도 안 하면 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억만 겁을 두고 몸을 보시하고 엄청난 재물을 보시하여 큰 공덕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로 지은 복이니 물질(몸도 포함) 자체가 허망한 것이고 상대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므로 그 공덕 또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인 공덕으로는 생사를 해탈할 수 없고 자성을 체득하지 못한 중생의 경계일 수밖에 없지만 이 금강경의 사구계는 자성을 깨달아 온 우주를 소유하고 생사대사를 해탈하여 영원불멸의 부처를 이루는 비결이므로 그 복덕이 비교도 안될 만치 많다고 하신 것이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하리라. 어떤 사람이 칠보로 만든 오락기구로 80년 동안 400만억 아승지 세계의 육도 중생에게 베풀어 주고 또 이들을 교화해서 아라한과(果)를 얻게 하였어도 그가 얻은 공덕은 어떤 사람이 법화경 강설함을 듣고 기뻐하며 다시 다른 이에게 전해주고 이렇게 전전하며 제50 번째의 사람이 법화경을 전해 듣고 기뻐한 공덕이 앞에 말한 칠보로써 보시하고 육도 중생을 교화한 공덕보다 더 많으니라. 이 경(法華經) 설함을 듣고 기뻐한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아승지와 같거늘 최초의 대회에서 듣고 따라 기뻐한 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무량무변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불지혜(佛智慧)를 구할 적에 80 만억 나유타 겁에 5 바라밀을 행하되 (반야바라밀 제외) 이 많은 겁동안 부처님과 연각 제자 여러 보살 대중에게 좋은 의복 좋은 음식 침구와 정사와 동산 등을 보시하고 공양하며 불도에 회향하고 혹은 청정한 계를 지키고 위없는 도를 구하고 하여 여러 부처로부터 찬탄받고(이하 생략) 이런 인연으로 여러 선정이 생기어서 80 억만 겁에 마음 편히 머무르는 큰 공덕이거늘 다시 선남자 선여인이 나의 수명 설함을 듣고 (불 수명은 무량아승지 나유타겁임) 일념으로 다 믿으면 그 복이 앞에 말한 복덕보다 더 많다.” 고 하시었다.

  이것은 불생불멸이고 무시무종인 본마음자리를 확실히 보고 실상에 계합기만 하면 그 공덕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치 많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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