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기본 교의로는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四聖諦)가 제일 중요한 내용으로 되어있다. 이 삼법인과 사성제는 그대로 불교의 연기론과 중도론을 설명한 것이다. 삼법인은 불교의 우주관이며 사성제는 불교의 인생관에 해당한다.
삼법인의 내용을 보면 첫 번째, 제행무상이다. 우주세계 만상은 모두 무상하다, 제행이란 돌아가는 모든 현상은 덧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제법무아(諸法無我)인데 모든 현상은 하나의 실체가 있고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조건에 의해서 생겼다가 환경에 의해서 없어지는 까닭에 하나하나의 사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 무상과 무아가 있고 세 번째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열반적정은 진리는 고요적적하고 형상에 집착하지 않아 불생불멸의 자기의 본성품은 대자유이며 고요하고 적적하며 상락아정이라는 것이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인데 불교의 인연법을 설명한 것이다. 이 연기는 무상론이고 무아론인데 왜 모든 현상이 덧없이 쉽게 바뀌어지고 변하느냐 하면 물은 물대로 영원히 물이 아니라 물이 될 수 있는 인연이 모이면 물이 되었다가 물이 없어질 수 있는 인연이 조성되면 없어지기 때문에 물의 모습 그 자체는 실로 무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물이 쓰임에 따라 각기 다른지만 수증기가 되어 나아가고 온도차이에 따라 어름이 되고 눈도 되고 빗방울이 되어 떨어지고 물이 모이게 되면 식수, 농업용수, 공업용수 등등 인연에 따라 형태가 각기 다르게 되며 순환은 거치면 다시 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무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아론(無我論)은 무엇인가. 자동차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자동차 그 자체가 자동차가 될 만한 어떤 불멸의 실체 있는 것이 아니고 차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속품과 기술과 윤활유라든지 타이어 운전자가 다 갖추어져서 자동차가 되며 또 하나의 역할을 담당해야 자동차가 되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의 부속품이 다 떨어져 나가고 기름도 없어지고 운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미 자동차가 아닌 것이다. 사실상 자동차로서의 실질적 주체는 존재하기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제법무아’인 것이다. 그러나 연기법은 어떤 현상이 나타나든지 안 나타나든지 간에 연기의 진리는 항상 그대인 것이다. 그것은 유아 무를 초월하고 무상과 무아를 초원해서 항상 그대로이기 때문에 이것을 열반적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얘기 마당 > 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마음을 항복 받아야(서두) (1) | 2024.09.17 |
---|---|
인생관으로서의 사성제 (1) | 2024.09.16 |
연기와 중도 (0) | 2024.09.13 |
금사탄 여울가에 마씨부인 (3) | 2024.09.11 |
현실은 마음의 그림자 (2) | 2024.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