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마당/내 이야기

현실은 마음의 그림자

산울림(능인원) 2024. 9. 8. 14:57

   옛날 성인(聖人)이었던 장자의 ‘남화경“이나 노자의 ’ 도덕경‘, 공자의 ’ 사서삼경‘을 많이 보고 바로 이해하면 세속에 얽매임 없이 마음이 홀가분해질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는 내가 미혹해서 세상살이에 꽁꽁 얽매어 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얽매임에서 벗어나 대자유의 마음으로 살아보자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일을 거칠게 하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야무지게 한다. 몸을 아끼지 않으니까 종일 일해도 피곤한지 모르고 일만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세상살이에 대한 생각 다 털어버리고 하니까 큰 힘도 나오게 된다. 무심(無心)해야 이렇게 끝까지 나오는 기운이 있지 무슨 생각이 많고 욕심이 많으면 그렇게 끝까지 큰 힘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 걸림 없는 무심한 사람이 되면 무한한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사명대사가 승려 의용군 6,000명을 이끌고 수십만이나 되는 왜군을 평양에서 경상도까지 밀고 갔다. 일본군 적장이 가등청정임에도 왜군들은 누구든 만나는 대로 무기를 버리고 도망가기에 급급했다. 사명대사는 마음을 깨친 높은 도인이니까 생각대로 제대로 물리칠 수 있지만, 범부대중도 그렇게는 안되더라도 금강경의 이런 마음의 법문을 듣고 모든 생각을 쉬어버리면 훨씬 편해질 것이다.

  조그마한 생각들 개미 발톱 같은 생각, 밤낮 생각해 봐야 얽매이기만 하지 아무것도 아니다. 매일 해봐야 나한테 돌아오는 것은 밥 세 그릇뿐이지 소득이 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열심히 노력해 봐야 하루 밥 세끼 옷 한 벌밖에 더 되는 것은 없는데 그런 것 때문에 공연히 동네사람이 다 굶는다고 해도 내 밥 한 그릇 안 내놓으려 하고 또 거기에 애착이 되어가지고 행어나 어찌 될까 두려워하니 사람이 이렇게 궁색하게 비열하게 살게 뭐 있을 것인가? 어떤 성직(스님) 자는 걸망하나 짊어지고 돈 없이 다니는 그런 사람을 운수객(雲水客)이라 하는데 구름과 같고 물 같은 손님이란 듯이다. 절도 내 집이 아니라 잠시 머물러 공부하고 가는 곳이다. 그런 가운데 같이 사는 승려가 감기몸살을 앓든지 중병을 앓든지 하면 약을 다려주고 혹시 급할 때 쓰려고 모아 두었던 비상급을 모아서 방구석 한편에 놔두게 된다. 그래서 한밤중에라도 약을 지어오면 내가 달이겠다고 서로 나서게 된다. 그래서 복을 짓는 것이고 내가 하심(下心)하는 것도 마음을 닦는 것이다.

  스님 가운데는 돈이 누구보다 많은 이가 누구인지 대중들이 다 아는데 탐욕 많은 대중은 천 원 한 장 내놓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병이 들더라도 남이 도울 수 없는 그런 장소에 가서 앓게 된다. 그 사람의 마음의 그림자가 다른 사람에게 비쳐서 대중들은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옷도 서너 벌 있으면 사람들과 나누어 입고 그런 사람은 아무 데나 가서도 의식주 걱정을 안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동네 가운데에 살면서 인색하여 헌 양말 한 컬러라도 잔뜩 쌓아만 두고 애당초 남한테 보이지 않게 돌아 앉아 일하고 남을 도울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은 평생 남의 덕을 못 보게 되어있다. 인과는 틀림없이 돌아오게 되어있다. 그림자같이 따라다닌다. 꼿꼿한 놈은 그림자도 꼿꼿하고 굽은 놈은 그림자도 굽듯이 꼭 그렇게 되어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어떤 귀부인 25명이 있었는데 흑인처럼 깝둥이고 눈도 코도 없는 무슨 흙으로 뭉쳐 놓은 것 같은 여자들이었다. 그래서 하도 괴이하여 그 연유를 부처님께 여쭈었더니 부처님께서는 ”아 그게 인과가 있어서 그러하니라, 과거 과거세에 저 25명 여인들은 창녀들인데 그때 마침 어떤 나한(도를 깨친 이)이 바리때를 들고 밥을 얻으려 그 여인들 집을 드렸는데 이들이 창녀들이라 남자 만났다고 놀리는데 얼굴이 못생겼구나, 떨어진 누더기에 거지처럼 꾸몄다, 아이고 얼굴이 못나도 저렇게 못났을까 하고 눈도 눈 같지 않고 코도 코 같지 않다고 하며 온갖 흉을 다 보고 가지가지 욕을 다했다. 그러다가 밥 좀 달라고 그러니 복지으려는 마음은 있어서 공양은 서로 많이 줘서 바리때가 하나 가득 차게 된다. 그때 노장 스님은 바리때를 들고 시방삼보에 공양하고는 그 창녀들을 위해 ’오늘 나를 위해 고양한 인연으로 죄가 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하고 기도를 하고 마당 한가운데서 바리때를 들고 공중으로 날아가버렸다. 창년들은 그것을 보고 그만 놀라서 성인에게 잘못했다고 마당에 내려가 수없이 절을 하고 참회를 했다. 이제 창녀들은 그 과보로 지옥에 떨어져 한 많은 고통을 받을 것인데 그 나한 마음에는 아무런 생각은 없지만 제가 짓고 제 발로 지옥에 들어가서 그 고생을 했고 아귀가 되고 축생이 되어 돌아다니며 고생하다가 그대도 그때 참회하며 예배드리고 밥을 많이 보시했으므로 여럿이 나누어 먹었는데 그 공덕으로 이제 저 사람들이 부자로 사는 것이며 그때 나한을 욕하고 비방했기 때문에 평생에도 내(부처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니라. “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있던 대중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중생을 위해서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 ”있다 그때 그 나한이 대승불교를 해 가지고 보살이 되었으니 그때 그 나한으로 있던 그 이름을 부르고 백일기도를 하라. 그러면 나의 장육금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했다. 그래서 이 여자들이 참회를 하고 곧 100일 기도를 충실히 했더니 기도 마치는 날 밤중에 좋은 상서가 보이고 그 이튿날부터 거룩한 부처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생의 나뿐 그림자가 사라져 그렇다고 하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내 마음을 항복받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내 마음으로부터 항복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조금은 여유와 자유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