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마당/내 이야기

화를 내면

산울림(능인원) 2024. 8. 13. 10:00

  화를 낸다는 것은 상대가 있어야 화를 내가 된다. 그래서 화를 내면 손해라는 것은 알지만 참으로 어떤 점에서 상대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가는 잘 모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내는 것을 상대를 해치는 일로 여겨 화내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를 내면서도 실체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마음속 화에 비해 미미할지도 모른다. 화를 낼 당시에는 설렁  해를 끼친다 해도 화내는 그 모습 이상으로는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치게 된다. 화가 나면 분명히 그 화풀이로 상대를 해치는 생각과 의지가 따라 나와서 실제적으로 해를 입히는 행위가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할 때는 내가 이 화를 나중에 내리고 속으로는 내가 화를 저축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즉, 화내는 내 마음의 상을 바로 보지 못하면 드러내지 않는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악업의 씨앗을 심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인식 속에는 스스로 배우고 겪어온 경험에 따라 선악(善惡)의 기준이 있어 깨끗함과 더러움이 함께 존재하고, 화내어 찡그릴 때도 있고 즐거워 활짝 웃을 때도 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이 선택기준이 분명하지 않고 자기 이익에 따라서 이 선택기준이 분명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 하여 상대적으로 상대를 틀리다 하는 경우도 있고, 또는 상대가 틀린다 하며, 상대적으로 자기가 옳다 하기도 한다. 만약 상대도 똑같은 의지를 가진다면 이들은 분명 서로가 주장하는 옳음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해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대하는 감정이 크게 작용하게 된다. 부모자식, 부부간에는 사랑도 남달리 크지만 사랑과 쌍둥이 자매인 증오도 또한 남달리 크게 쌓이게 될 것이다. 왜냐면 정(情)이 남보다 각별하기 때문이다. 정은 번뇌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즉 사랑과 증오를 함께 가져오게 하니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어쩌다 잘못되면 가장 증오하고 미워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더 큰 문제는 이 둘이 함께 공존해 있을 때이다. 예를 들어 자식을 때려서 공부를 가르쳐 훌륭하게 만들었다 하여도 때린 죄는 죄대로 가고 가르친 공은 공대로 남게 된다. 즉 매 맞은 그 당시에는 왜 부모에게 매를 맞는지 그 이유를 안다 하여도 나중에는 매 맞은 인연만 기억되고 이 인연 따라 새겨진 부정적인 마음이 미워하는 마음을 낳게 되고 이 미워하는 감정은 나중에 부모를 해치게 되는 자료로 입력이 된다. 따라서 이 감정을 잘 마무리(즉 미움을 긍정하면 부모로 인연 한 이 괴로움이 심해져서 부모에게 노한 감정이 일고 이에 따라 증오심이 생김을 바로 보게 되어 부모를 미워하는 것은 잘 못된 일이고, 이 매는 나를 선하게 만들어 미래에 잘 살게 하기 위한 일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에 따라 부모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지고 기쁨의 마음이 일어 오리려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감정을 갖고 즐거운 모습으로 부모님을 대하게 된다.)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악업을 소멸하고 복을 가져오는 선업을 닦게 된다. 반대로 부모라는 굴레에 갇히어 “부모님 이니까, 나를 때려도 미워하면 안 된다.”하고 강하게 버팅기면 매도 좋은 것으로 착각하게 되어 부모를 해치려는 마음은 더욱더 깊이 숨어서 갈수록 어둡게 작용하게 된다. 자신은 부모의 공덕을 갚는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선한 너울 속에서 해치는 일을 자행하게 된다. 모르면 갚는 일과 해치는 일, 이 둘을 하나로 즉 전부 선한 일로 간주하여 악조차도 옳다 착각하고 선으로 인식하며 살게 되니 항상 괴로움은 떠나지 않게 된다.

  “어머니 약 드세요.”하면서 앞에 가서는 약을 퍽하고 엎지르게 된면, 물론 실수라 하겠지만 일어난 일은 어머님의 약사발을 땅에 내던지고 엎질러 약을 못 잡수시게 한 것이다. 약을 드린다는 선함 속에 실수라며 악함을 숨기는 것으로 서로 “괜찮다.” “미안해요. 죄송해요.” 하지만 마음은 편치 못하게 된다. 또 내가 부모님 덕택에 이만큼 출세를 했으니 효도한다고 부모님을 해외여행 보내 드릴 경우가 있다. 여행사에 돈을 주고 덜렁 나이 드신 두 분만 보내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마치 늙은이가 민방위 훈련받은 것처럼 여행하고 돌아오게 된다. “구경 잘하고 오셨습니까?”하고 자식은 자랑스럽게 묻고 부모는 “응! 덕태에 구경 한번 절하고 왔다”하여도 “속은 노란색 안내 깃발만 쳐다보며 깃발 따라왔다 갔다 해서 구경이라고는 그 노랑 깃발뿐이다. “라고 할지도 모른다. 젊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가이드는 가이드대로 애 취급하듯 몰아붙이고 일행은 일행대로 꾸물거린다고 눈총을 주니 그들이 눈치 보느라 마치 한동안 남모르는 섬에 유배 가서 정신없이 살다가 오는 격이 될지도 모른다. 즉 자식의 체면치레 효도치레를 위해 겉껍데기만의 선한 좋은 모습은 있었을지 몰라도 속은 결코 좋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일 년에 몇 번 일요일에 자식들과 함께 야외에 나가 즐기는 것만 못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고를 잘 마무리하지 못하고 ”어떻게 자식이 아버지를 미워하나, 그럴 수 없다 “하여 꼭꼭 눌러 놓았던 그 화가 때가 되면 이처럼 드러나 작용하여 괴로움 속에 우리를 가두게 된다.

  미워함은 미운 대로 되돌아감을 미처 살피지 못하니 ”나는 효도해야지.“하지만 결국은 불효만 하게 된다. 진정한 효자라면(부모의 매 때리는 공덕을 안다면 그 때 때리는 아픔도 같이 느낌) 부모를 위한 일을 할 때 부모가 겪으며 느낄 마음속의 기쁨 즐거움과 함께 허전함 고통도 같이 살필 줄 알아야 된다. 미움을 미움 그대로 볼 수 있어야 만이 미움을 다스릴 수 있고 미움을 가만히 지켜보면 마치 구름 속에 갇힌 해가 다시 나오듯 은공만이 남게 된다. 이 은공 따라 효도를 함으로써 다겁생래 쌓여온 부모님에 대한 은혜를 갚는 바른길을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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