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혜/경봉스님

먀정영(乜政永)의 지혜(知慧)

산울림(능인원) 2026. 3. 7. 13:35

  나라의 육해공군은 사람의 수족과 같고 눈이나 귀와 같은 것이다. 군인이 잘함으로써 나라가 부강해지고 민족이 편안해지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군인의 책임이 크다는 뜻에서 깊은 생각을 국민은 물론 군인도 똑같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

   부처님 교법에 대해서 들으려 하는 여러분이 있어 산에서 내려왔지만 아는 것은 별로 없으나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산간에서 수행하고 있었으니 체험한 대로 조금 소개할까 한다.

  법문 듣는 자세를 비유해 보자. 허공에 오색영롱한 채색 구름이 일고 거기에 신선이 나타났다. 머리에는 번쩍거리는 금색 화관을 쓰고 손에는 백우선(白羽扇)을 잡았는데 금방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번쩍거리는 화관과 백우선을 보느라고 정작 그 신선이 어떻게 생겼나 보려면 얼굴을 보아야 될 뗀데 얼굴을 못 보았다. 이 말의 뜻을 잘 살펴봐야 한다.

  부처란 깨닫는다는 뜻이다. 무엇을 깨닫는가 하면 나의 심성(心性) 즉 진아(眞我), 참된 자아(自我)를 깨닫는다는 말이다.

  뜨거운 것이 불의 심리요 젖는 것이 물의 성리 이듯이 사람의 심리는 깨달아 아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일에 깨달아 아는 그것이 부처이다. 마음 외에 부처가 바로 없고 부처 외에 따로 마음이 없으니 부처와 마음이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 청정한 것이 부처이다.

   법당에 등상불(等像佛)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 놓은 것은 제사를 지낼 때 지방(紙榜)을 쓰고 종묘(宗廟)에 위패를 모시는 것과 같이 그 종이나 나무조각이 선조(先祖)가 아니지만 다만 신앙의 대상으로 보셔 놓고 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등상불은 신앙의 대상이고 참된 부처님은 사람마다.  마음자리가 곧 부처이니 불교를 처음 믿는 이들은 이렇게 진리적으로 알아야 한다.

  석가여래께서 왕궁에 태어나서 왕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설산으로 간 것은 다만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석가는 자아  발견 즉 자기 부처를 발견한 것이다. 이 자성(自性) 자리를 발견해서 우주의 진리를 안 것이다. 팔만대장경이 모두 우주의 진리를 말한 것이다. 진리는 도이니 우리 인생의 생명이다. 이 진리를 찾는 것은 내 생명을 찾는 것이다.

  쇠가 풀무 간에 들어가야 낫이나 칼 혹은 호미가 되든지 무엇이 새롭게 태어나오게 된다. 그러니 마음자리를 단련하고 단련해서 정신이 살아야 된다. 아무리 국가에 군인이 많고 무기가 하늘에 꽉 차도록 많아도 국민의 정신이 죽었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된다.

  누구든지 젊을 때 군에 한번 다녀오는 것이 국민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도 좋은 일이다. 정신을 다시 살려 주고 일깨워 주는데 천년만년 더러워진 못의 물이라도 수청주(水淸珠)라는 구슬을 넣으면 그만 물이 깨끗해지듯 군에서 정신을 다련 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야 한다.

  국제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려면 이 정신 하나가 살아야 된다. 금을 캐는데도 금 속에 은·동·철· 등이 섞여 있는데 이 잡철을 모두 빼버려야 이십사 금의 세계에 통용되는 보배가 된다.

  신라 시대에는 보검을 만드는 법을 적은 책이 있었는데 지금은 볼 수가 없다. 일본 사람이 좋은 책은 다 가져가서 자기네 것으로 좋은 것을 만들고 있다. 보검은 그냥 두드려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천 번 만 번 두드려서 쇠똥이 다 나와야 보검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가운데 본래 청정무애한 부처자리를 가지고 있다. 동자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천진난만한 마음자리를 지니고 있지만 십오 세부터 나이가 들수록 차차 물질에 애착이 붙고 오욕에 탐심이 되어서 그 맑은 자리를 어지럽혀 놓았다.

  이 부처자리를 수련하고 단련하여서 보검과 같이 혹은 이십사 금이 되어서 세계에 통용되는 보배처럼 되어야 한다.

  여러분이 군문을 떠나서 사회에 나가서 사람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면 그 마음이 옥이나 해와 달같이 깨끗해야지 거기에 어둠이 있어 말이나 행동에서 냄새가 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보검과 이십사 금과 같이 아무런 때가 없어야 위대한 지도자인 것이다.

  예술, 미술, 철학, 종교, 경제 모든 것이 구경(究竟)에는 나라는 것이 없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글씨나 그림도 처음 배울 때는 돈과 명예를 얻으려고 하지만 나중에는 돈도 명예도 어디로 가버리고 옷이 더러워지고 밥을 제때 먹었는지도 모르고 무아의 경지에 들어감으로써 탈속한 글씨와 그림의 예술이랄 수 있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야 남을 지도할 자격이 완성된다.

  모든 분야의 박사들이 세상에 많이 있지만 한 가지 학문을 배워 가지고 완전한 인격자라 할 수 없다. 완성된 인격의 소유자는 그 지식 위에 이러한 무아(無我) 무소유(無所有)의 멋진 도덕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이 도덕이란 별스러운 것이 아니라 공기 가운데 전기 전자는 나무, 사람의 몸, 물 등 삼라만상의 어디에고 모두 통하고 있듯이 도의 진리는 우리 일상생활에 다 있건만 이것을 모른다.

  세계의 종교는 불교, 예수교, 회교 등이 있는데 마음 빼면 아무것도 없다.

  불교의 진리는 자기 마음을 부처라 한다. 일상생활에 이 마음을 내놓고는 아무것도 없다.

  촛불을 켜놓고 눈과 분별하는 마음을 촛불에 두면 수련된 사람은 일념으로 정신이 통일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문을 닫아 놓았는데도 마음은 부산으로 대구로 서울로 친구집으로 왔다 갔다 한다. 촛불을 보고 거기 있으라는 마음이 지나간 일, 현재의 일, 미래의 일들이 국 끓듯이 해서 이 생각났다가 없어지면 저 생각나서 없어지고 하는 것을 이름 지으면 망상심, 불별심, 사량심,계교심이요 죽은 마음이지 산 마음이 못된다.

  공부를 해서 도인이 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하루에 대여섯 시간만 정신 통일이 되면 일상생활에 관찰력과 판단력이 빨라진다. 누가 무슨 일로 찾아와서 몇 마디만을 주고받으면 긴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무엇 때문에 저 말을 끄집어내는지 단박 안다.

  가정의 일이나 사회의 일이나 국가의 일을 지혜롭게 처리해야 될 텐데 정신을 모아서 집중시킨 것은 적은데 모든 일들이 예사로 단순하지가 않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 정신 집중시키는 선(禪)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부분에 정말 귀중한 원동력인 것이다. 이 일만이 오로지 온 인류가 평화를 성취할 수 있고 온 인류의 공통 관심사인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얻을 수 있는 진리인 것이다.

  우리가 어머님 태중에서 나올 때 맨주먹으로 옷까지 벗고 맨몸으로 나왔는데 지혜가 있으면 잘살고 지혜가 없으면 못 산다.. 정신 집중이 개인적으로 이렇게 필요한 것이니 관찰력, 판단력, 기억력이 좋아지고 몸에 병이 있어도 가벼워지며 나쁜 마음도 바른 마음으로 돌아가고 밝은 지혜가 생긴다.

  하루 이십사 시간 중에 여덟 시간 일하고 여덟 시간 자고 네 시간 휴식을 취해도 네 시간이 남으니 한두 시간이라도 정신을 집중시키는 단련을 해볼 만한 것이다.

능금이나 배를 한 개 다 먹어야 맛을 아는 것이 아니라 콩알만큼만 먹어도 그 맛을 알 듯이 말이 너무 길고 많으면 재미가 없다. 이만하면 불교라는 것이 무엇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학문보다는 인격이 훌륭해야 되는데 학문을 아무리 배워도 잘 이용하지 못하면 안 되고 또 인격이 없으면 옥편(玉篇)이 되고 만다. 옥편은 무슨 글자든지 찾으면 있고 물으면 무슨 뜻이라고 답하듯이 그 학문을 활용할 줄 모르는 인격은 흡사 옥편 노릇밖에 못하는 것이다.

  예전 중세조선 시대에 먀(乜) 정승의 일화가 옥편 인격을 경계하며 전해지고 있다. 서울 사는 먀 정승이 시골 친척집에 가서 소일하고 있는데 때마침 소낙비가 퍼붓고 있었다. 안채에 있는 어른들이 안마당 건너있는 대여섯 살 난 꼬마에게 빗자루를 가져오너라 하고 심부름을 시키니까 이 꼬마가 비를 맞기 싫어서 강아지를 부르더니 강아지 허리에 빗자루를 묶어서 궁둥이를 탁 치자 빗자루를 안채로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먀 대감이 그 꼬마의 소행이 하도 신기해서 데려다가 공부시키면 장차 큰 그릇이 되겠구나 해서 양자를 삼아 서울로 데려갔다.

  이 양자로 데려간 아들이 글을 읽어야 할 텐데 글은 읽지 않고 매일 노는 데만 열중이니 야단이다. 타이르고 꾸짖어도 그때뿐이지 도무지 글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양반의 자식이 글을 읽어서 과거를 봐야 할 텐데 놀기만 하니 걱정이 태산 같다.

  하루는 먀 정승이 아들에게 수수쌀 소두 한 말을 내놓고는 내가 어디 갔다 올 터이니 그동안에 이것을 전부 셀 수 있겠는가 하고 물으니 셀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몸종에게 어떻게 하는가 지켜보라고 분부하였다. 해 질 녘에 돌아와서 아들을 불러 이 수수쌀이 몇 낱이냐고 물으니 얼마라고 척 대답한다.

 몸종을 불러서 어떻게 하더냐고 물으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동네 아이들하고 장난하고 놀다가 점심 먹을 때쯤 해서 들어오더니 하인 수십 명을 불러 놓고서 저울을 가져오게 하고는 한 냥을 달아서 놓고는 몇 알이 되는지 세라고 하더니 수효를 한 뒤에는 자꾸 저울량만큼 떠서 계산해서 수수쌀 한 말의 수호를 맞추어 놓더란다.

  먀 정승이 생각하기를 이놈은 공부를 하라고 재촉하지 않아도 사람 수실을 할 놈이구나 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중에 스무 살이 조금 지나서 과거를 보러 갔다. 다른 선비들은 글을 짓는다고들 야단인 데 이 먀 서방은 어떤 선비 한 데 가서 명주를 내놓고는 큰 글씨에 초서로 “臣以忠報國(신이충보국)”이라 써달라고 했다. 신은 충성으로써 나라에 갚겠습니다라는 글을 받아 가지고 그것을 장대에 높이 매달고는 어전(御前) 과거장 앞을 왔다 갔다 하였다.

  임금이 그것을 보고는 신하 되고 백성 되어 충성으로써 나라에 갚으면 그뿐이지 글이 아무리 잘 되어도 충성이 없으면 무엇하겠는가. 조그마한 초립둥이가 참으로 희한하다 하고 가상이 생각하여 임금이 불러 가지고 너는 글이 없어도 되겠다 하고는 나라 대신들이 노경에 접어들어서 가는 수원유수(水原留守)라는 벼슬을 주었다.

  경기 감사한테 인사차 갔는데 감사가 보기에 조그만 초립둥이가 수원유수가 되어 오니 같잖게 여기면서 저것이 어떻게 치민치정(治民治政)을 할 것인가 하고 걱정을 했다. 감사가 기생을 불러서 은밀히 지시하기를 수원유수가 대청으로 인사하러 올라설 때에 등을 툭툭 치면서 “어떤 사람은 이런 참한 자식을 낳았니.. 나도 저런 자식을 낳았으면 얼마나 좋겠니.”.” 그리고 인사를 마치고 나갈 때 도포자락이 문에 걸리도록 닫고는 “꼬리가 치었습니다.”라고 하라 하니 기생이 “아이고 쉰네가 그 말을 하면 죽을 텐데 어찌합니까.”라고 하니 감사 말이 “안 죽도록 할 터이니 그렇게 해보아라.”라고 했다.

  그래서 기생이 감사가 시키는 대로 유수가 대청에 올라설 때 죽을 요량하고 등을 툭툭 치면서 “아 어떤 사람은 이런 참한 자식을 낳았니.”라고.” 하자 유수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네 이년 나 같은 자식을 낳아서 무얼 해,, 이왕이면 도백 같은 자식을 낳아라.”라고 했다.

  도백은 감사를 이르는 말이다. 일개 기생이 나에게 때에는 감사가 시켜서 한 것이지 기생의 간담으로서는 할 없을 것이라고 이미 간파하고 감한테 그 욕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인사하고 나가는데 기생이 문을 탁 닫아 도포자락이 걸리게 하고는 “꼬리가 치었습니다.”라고 하니 “네 이년 마구간을 크게 짓지.”라고 했다. 마구간은 소나 말을 매어 두는 집인데 감사의 방이 그만 마구간이 되고 말았다.

  먀 서방이 비록 나이는 어려도 지혜가 다른 이들보다 초월한 바가 있어서 감사가 시험을 하려다가 욕을 두 번이나 얻어먹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하더니 조그마한 초립둥이가 여간 아니어서 치민치정을 잘하겠구나 하는 미더운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 후 먀 서방은 벼슬이 차차 올라가서 무식한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일인지하(一人之下)에 만인지상(萬人之上)인 영의정이 되었다. 조정에 무슨 어려운 일이 있어 임금이 먀 정승을 불러 의논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서슴없이 말하는데 그대로 하면 아무리 어렵고 복잡 미묘한 일이라도 원만히 순조롭게 일이 잘 풀려가니 글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지혜로운 정승 하나로 온 나라가 태평성세(太平盛世)를 누리는 것이다.

  꽃 피고 잎 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날, 나라 대신들이 남산에 올라 화전(花煎) 놀이도(花煎) 하고 운(韻)을 불러 시를 짓는 시회(詩會)를 열었는데 운을 돌려 가며 시를 짓는 이들에게 술잔이 가는 법이니 자연 먀 정승에게는 운자도 술잔도 무식하기에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

  먀 정승이 “나에게도 술잔을 돌려라. 나도 글 한 바리 짓자.”하고는 “왜 우리가 남산에 올라올 때 왈그락덜그락 올라오지 않았나. 그러니 왈그락덜그락 상남산(上南山)이라 써라, 그리고 올라오다 이 편 저 편에 복사꽃이 피지 않았더냐. 이 편 저 편 桃花發(도화발)이라 써라. 언문과 진서를 섞어서 지었으니 언문진서(諺文眞書)를 섞어 작(作 )이라 써라. 그리고 끝에는 시비론자(是非論者)는 황견자(黃犬者)라 써라.”라고 했다.

  옳고 그르다 잘 됐니 못 됐니 하는 놈은 모두 누렁이개 아들이라 하니 서로를 바라보고 눈만 끔벅끔벅하며 웃기만 하지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무식해도 워낙 지혜로우니 이것은 완전 격식밖의 대장부인 것이다. 이렇게 되자면 정신을 집중하기를 하루 대여섯 시간씩 이 수련을 쌓아야 학문보다는 인격이 훌륭해지는 것이다. 남의 지도자 되려면 지혜가 일월(日月)과 같이 밝아서 쾌활하고 명랑하고 낙천적 기분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6.25 때 통도사에는 큰 절을 비롯해서 열 두 암자가 있는데 3,000여 명의 상이군인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중에 정신이상이 생긴 장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수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일선으로 싸우러 가는데 부하들이 하룻밤 묵고 가자는 것을 장교가 우겨서 가다가 부하들이 전몰당하자 내가 고집이 세서 부하들을 모두 죽이고 나 혼자 살아남았으니 무슨 면복으로 살 것인가 하고 정신이상이 생겼다가 그만 죽었다. 사람이 지혜가 있으면 모든 일을 영감적으로 판단하게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예를 하나든 것이다.

  신선의 약에 환단과 금단이 있는데 하나만 먹어도 일체 병이 떨어지고 오래 살 듯이 부처님 말씀도 믿고 그것을 우리 주변의 일상생활에 생활화해서 실천에 옮겨야 된다. 관찰력과 판단력이 빨라서 눈만 끔적하고 손만 들어도 알아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장사를 하더라도 전에는 수판을 놓아서 회계를 했지만 요즈음은 전자계산기로 한다. 수판에 딱 맞아도 될지 말지 한데 투기적으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 모앙으로는 안 되겠나 하는 어름 한 생각으로 하면 다 실패하고 만다.

  달세계에 미국사람이 가서 성조기를 꽂고 돌아왔으니 신비하게 생각했던 것도 전부 파괴해 놓았다. 오늘날 사람의 지혜가 달세계에 갔다 올 정도로 예전보다 발전했다.

  끝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할 것은 아무쪼록 몸 건강하기를 빈다. 정신이 살면 몸이 건강해지고 정신이 죽으면 오장인 심장·비장·신장·폐장·비장·신장· 가운데 수심 보따리를 가지고 공연히 걱정을 해서 심장불, 신장불이 위로 올라와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게 된다.

  그러니 이 마음을 허공과 같이 태연하게 가지고 내가 우주 인류를 화평케 하고 이익을 주겠다는 커다란 생각을 가지고 걱정, 수심 보따리를 털어 버리면 정신이 건강해서 국가의 동량이 되어 많은 사람을 구제해 줄 것을 바라겠다.

  數片白雲籠古寺(수편백운농고사 : 몇 조각 흰구름이 옛 절에 어리었는데)

  一條綠水繞靑山(일조록수요청산 : 한 줄기 푸른 시냇물이 청산을 둘러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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