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래 우주가 처음 생길 때에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것인데 모든 일력(日曆)이나 모든 기준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진리법문은 귀에 한 번 스치기만 하면 여래장(如來藏)에 들어가는데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듣고 기억하는 것이 어디에 들어가 있는가 하면 이 여래장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 여래의 곳집에 넣어두기만 하면 결국에는 깨달음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우리가 이 진리에 귀의(歸依)하고 이 진리를 들어서 실천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나고 죽는데 물들지 않고 나고 죽는데 해탈하고 나고 죽는데 초월하는 그 경지에 도달하자는 뜻이다.
우리가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이 생로병사에 자유자재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석가여래께서도 왕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 자리 하나 밝히신 것이다.
이 자리가 본래 공한 것을 요달(了達)하게 되면 아무리 내 마음이 팔만사천 번뇌 망상으로 인해서 복잡하게 되었더라도 그 지혜로써 모두 탕제(湯劑)해 없앤다.
번뇌망상으로 마음이 복잡하더라도 본래 허공처럼 텅 공한 것이다. 그것을 요달하고 또 신공(身空)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지수화풍(地水火風) 등의 서른여섯 가지의 물질로 조직되어 있는데 이 자체가 공적(空寂) 한 것을 요달 하는 것이다. 요달 하면 둘이 없다 둘이 없는 가운데 그 당처가 텅 공하였다. 자기의 그 골똘히 공한 것을 돌이켜 관하니 공한 가운데 다시 공했다. 있고 없는 것에 초월하면 만연(萬緣)이 비워지고 쉬어진다. 그래서 과거 지은바 일체 선악과 활동사진과 같은 환화오온(幻化五蘊)이 활연히 밝아지고 잦아진다. 공부를 자꾸 해가노라면 공한 그 당처가 나타난다.
천지가 여아동근(與我同根)하고 만물이 여아동체(與我同體)라는 것은 경에도 있지마는 이 마음으로 인해서 내 몸도 생기고 삼라만상이 모두 생겼으니 그렇겠다고 여겨지더라도 공부가 깊지 많으면 만물은 만물이고 나는 난데 같은 것이 뭐가 있나 하고 긍정이 가지가 않는다.
공부를 자꾸 해나가노라면 내 몸도 공하고 우주도 공한 이치가 나타난다. 그래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각체(覺體)만 드러난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해야 참으로 부처님의 말씀이 그렇구나 하고 점두(點頭)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자리 이 심성(心性) 자리는 본래 청정한 것인데 번뇌망상이 들어서 꾸정거렸지만 그렇더라도 이 자리는 본래 청정한 것이다. 망상이란 본래 없는 것인데 진노심(塵勞心)이 자연히 일어나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 자리는 청정하다는 것도 들어올 수 없다. 번뇌망상도 들어가지 못하지만 청정하다는 것도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경계인 것이다. 이 청정한 경계는 모든 진노(塵勞)가 물들이려 해도 물들일 수 없고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럽힐 수 없다. 연꽃은 깨끗한 고원(高原) 지대에 나는 꽃이 아니다. 그렇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지만 더럽고 냄새나는 시궁창 같은 연못의 진흙 속에서 솟아나는데 이 꽃에 더러운 똥물이나 또 어떤 색깔의 물감으로 물들이려 하면 받기는 다 받지만 조금도 묻지 않고 물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우리도 본래 청정한 것을 오욕진노에 찌들어 그 속에서 살다가 부처님의 청정한 경계에 들어가면 오욕진노가 그 자리를 더럽히려 해도 더럽힐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청정한 것을 자기가 더럽혀서 그 속에서 번뇌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단련하는 이 심성자리는 더럽히려 해도 더럽힐 수 없고 남이 뺏으려 해도 빼앗을 수 없는 지극히 청정한 세계인 것이다.
이 몸이 죽으면 소소령령(昭昭靈靈) 한 이 자성자리가 윤회(輪迴)를 해서 다시 태어나는가 아니면 없어지는가. 잿불 사그라지듯이 없어지는가, 몸이 죽고 나면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누가 자기 부모를 때리면 왜 때리느냐고 화를 내고 달려들지만 돌아가셔서 화장을 하게 되면 뼈를 잘 부셔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사람이 죽으면 아주 없어지는가, 윤회를 하여 어디에 다시 태어나는 가, 이것은 의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세조선 말기에 용악(用惡)이란 스님이 계셨다.
그 노장스님을 내가 젊을 때에 뵌 일이 있었는데, 석왕사(釋王寺) 스님인데 참선은 못하고 경 읽고 염불하고 선법(禪法)이 쇠퇴하던 시기니까 금강경(金剛經)을 십여 년 동안 여러 수십만 번 독송하여 이에서 사리(舍利)가 나왔다 한다.
석왕사에 있을 때에 꿈을 꾸었는데 오산 수암사라는 곳에 가서 차담을 대접받고 또 잔을 석 잔 받은 일이 있어서 그것을 기록해 놓았는데 해마다 그날이 되면 꿈에 오산 수암사라는 곳에 가서 그렇게 대접을 받곤 하는 것이 참으로 희한하게 생각이 들곤 하였다.
오산 수암사가 어디에 있는 절인가 하고 늘 궁금하게 여기던 차에 하루는 객실에서 어느 객스님이 무슨 말을 하던 중에 오산 무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는 퍼뜩 정신이 들어서 오산이 어디에 있느냐하고 물으니 그 스님이 “소승이 오산 수암사에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반갑던지 “스님께서 수암사에서 오셨다고 하니 내가 물어볼 말이 있는데 부엌에까지 나무 홈대로 물이 들어가고 돌로 수각이 되어 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수암사의 대강 모습이 이러이러하냐고 물으니 “네 그렇습니다마는 스님께서 수암사에 언제 와보셨습니까? 수암사는 함경북도 멀리 있는 절인데...”라도 했다.
“그러면 모월 모일은 그 절에서 무슨 행가 있는 날입니까”라고 하면서 매년 이상한 꿈을 꾸던 날을 불어보니까
“예 그날이 우리 오산 수암사의 중창주(重創主) 되시는 스님의 제삿날입니다.”라고 했다.
아하 그랬었구나,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자기는 오산 수암사의 중창주로 있다가 다시 태어나 이 몸을 받았기에 제삿날마다 꿈에 그 제사를 받아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러면 그 스님을 뵈었으면 그 스님이 평소에 원하시던 바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 스님께서는 해인사(海印寺)의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을 인쇄를 해서 모셔놓고 경을 보려고 원을 하셨더랬습니다.”라고 했다.
용악스님이 평소에 늘 생각이 떠나지 않던 일이 바로 해인사 고려대장경을 인쇄해서 모셔놓고 읽으려던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내가 금생에 처음으로 그것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오산 수암사를 중창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소원이었었는데 한생을 바꾼 지금도 그 원력이 가슴에 그대로 남아서 그 생각을 하는구나 하는 불꽃같은 마음이 확 하고 가슴이 메어지도록 뜨겁게 벅차오르는데 전생에 못 이룬 원을 금생에는 기어이 이루리라하고 마음속 깊이 다짐하였다.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면 또 모르려니와 꿈에 수암사에 가서 차담과 잔도 받고 또 전생의 원력도 확인되었고 해서 더욱 생각이 간절해졌다.
꿈에 그렇게 되는 것도 영대(靈臺)가 좀 밝아야 그렇게 되는 것이다.
원력을 성취하려고 병신년(丙申年)에 통도사(通度寺) 적멸보궁(寂滅寶宮)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다. 자기 힘으로는 이 불사(佛事)를 이루기가 힘이 드니 부처님의 위대한 힘으로써 이 대장경을 인쇄하는데 나라의 힘으로 이 일을 해달라고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기도를 맞는 날 자장암(慈藏庵)의 금개구리가 내려와서 큰 법당 탁자 위 그 뜨거운 불기(佛器)에 붙곤 하는 상서를 보였다.
금개구리는 보통 청개구리보다 약간 커 보이는데 입가에 노란선으로 무늬가 있으며 발도 수술처럼 생겼다. 서리 내리는 늦가을에는 벌이 되어 절벽의 작은 구멍에서 머리만 조금 보이며, 나비가 나오기 시작하는 초봄에는 나비로 잠시동안 있다가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내내 개구리로 있는데 거미철인 육칠월에는 거미로 변신 되어 잠시 그 작은 구멍 속에 깃들어 있는다. 그 작고 묘하게 생긴 절벽 위의 구멍 속에서 아직까지도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신비(神祕)를 혼자서 증험으로 들려라도 주려는지 입을 오물오물하고 있다. 세상에는 기이한 이적(異跡)도 많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로써 천오백 년 가까이 그것이 지속하고 있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이다.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자장스님께서 통도사를 창건할 때 자장암에 주석(住錫)하였는데 이 금개구리 한쌍이 자꾸만 수각(水閣)을 더럽히기에 갖다 버려도 다시 와서, 자장스님이 이 수각 석벽 위에 구멍을 뚫어 그 속에 넣고 영원히 영축산(靈鷲山) 고기(古基)를 지미며 살라고 수기(授記)를 주셨다 한다. 그 금와(金蛙)가 뜨거운 불기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자기의 이번에 하는 기도가 성취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다.
그 이등해인 정유년(丁酉年)에는 해인사 장경각 정원인 금잔디밭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였다. 얼마나 열심히 하였는지 그 스님이 기도하던 금잔디밭의 그 자리는 삼 년간이나 풀이 나지 않았다 한다.
칠십일쯤 지났을 때인데 점심을 먹고 마당에 서서 기도를 하려니까 큰 뱀 두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문득 생각하기를 화엄경(華嚴經) 가운데 화엄호법성중(華嚴護法聖衆)이 있는데 그중에 복행신장(服行神將)은 뱀의 몸을 나누는 신장이다. 그러니 오늘 내가 복행신장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합장하고 내가 이 기도에 화엄복행신장이 왕림하였으니 이 대장경 인쇄를 하려는 원을 이루어 달라고 속으로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 뱀들이 장경각 둘레를 돌기 시작하여 축원을 하면서 따라 돌았는데 그 뱀들이 어느 경관 곁으로 가더니 문득 사라져 버린다. 과연 복행신장이 온 줄 확신하였다. 그렇게 해서 기도를 회향(廻向)하고 그때 해인사에 화주(化主)로 계시는 범운화상(梵雲和尙)에게 “이제 나라에서 장경불사(藏經佛事)를 하라고 할터이니 권선책(勸善册)을 하나 미리 매어놓으시오”라고 말했다. 기도하던 스님이 영문도 모르는 권선책을 매어놓으라니까 이상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 이듬해인 무술년(戊戌年) 오월달 뜻밖에도 나라에서 해인사에 통보가 왔는데 장경불사를 할터이니 화주책(化主册)을 가지고 올라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법운스님이 화주책을 임시 매어 가지고 올라갔는데 탁지부(현 재무부)에서 육만 냥 경운궁에서 천오백 냥 의정부에서 칠천오백 냥 경남관찰사가 오백 냥 통도사에서 신도들 하고 오천 냥 도합 칠만 사천 오백 냥으로 그 불사를 무사히 마쳤다. 대장경 네 부를 하였는데 일 부는 통도사 일 부는 해인사 일부는 송광 불법승 삼보사찰에 나누어 모시고 일 부는 전국 유명한 절에 나누어 모시게 하였다.
용악스님이 통도사 장경각 옆에 방을 하나 마련해 가지고 지내는데 하루는 한때씩 자셨다. 한 그릇 반쯤 되는 양이었는데 부처님께서도 하루에 한때씩 자셨으니까 그님께서도 그렇게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강원(講院)의 학인(學人) 때인데 학인들이 “스님손이 참 부드럽습니다..”라고 하면 “도라면수(兜羅綿手)이지”라고 한다. 도라면수란 부처님 손이란 말이다.
그 스님이 입적(入寂)하기 삼 년 전에 미리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칠십구 세 되시던 이월 보름날 열반하셨으니 나도 삼 년 후면 칠십아홉이 되는 해니까 그해 이월 보름날 나도 가겠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삼 년 후 그해가 돌아오니 모두들 저 스님께서 올해 돌아가신다고 하더니 어찌하시려는고 하였는데 이월 보름날이 되니까 아침 자시고 각 법당마다 참배하고 돌아와서 밤이 깊어지자 가만히 앉아 입적(入寂)하였는데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 넘쳤다. 경만 지극하게 읽어도 이렇게 편안한 입적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경이든지 경이 마음 가운데 있으면 범부의 경계에 떨어진다. 그것은 줄타기하는 사람이 작대기를 짚고 줄을 타는 것과 같아서 경에 의지하는 것은 마치 작대기를 짚고 줄 타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 작대기를 버리고 줄을 타야 한다. 또 만약 경을 없애면 모든 부처님의 계급에 떨어진다. 계급이 없어야 하는데 계급에 떨어지면 되는가. 그러니 내버려 두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어려우니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최후의 일구(一句 )가 있으니 잘 들어야 한다.
저것을 봐라 무엇을 가지고 저것이라 하는가
저것을 보지 않으려거든 이것을 봐라
이것이 무엇인고 악!
'참지혜 > 경봉스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몽천자(夢天子)와 무수왕(無愁王) (1) | 2026.02.13 |
|---|---|
| 結制示衆(결제시중) (0) | 2026.02.03 |
| 육조(六祖) 스님 말씀 (2) | 2026.01.23 |
| 수행인(修行人)의 자세 (2) | 2026.01.19 |
| 여덟 가지 복전(福田) (1) | 2026.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