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혜/경봉스님

수행인(修行人)의 자세

산울림(능인원) 2026. 1. 19. 18:58

  一松一竹溪水雲(일송일죽계수운 : 솔밭 대밭 그 사이엔 시냇물 구름은 흐르는데)

   唯有淸風伴月輪(유유청풍반월륜 : 맑은 바람이 달빛에 젓네)

  예전 중세 조선조 말에 대신인 김성근(金聲根 ) 대감이 늘 글씨가 쓰인 종이로 변소의 휴지로 사용하다가 석자우(惜字友)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글자를 아끼는 그런 내용으로서 휴지에는 성인의 이름도 있고 자기의 조부모 이름도 있는데 석자우 책을 보고는 김성근대감이 자기가 휴지로 닦는 그것을 뉘우치고 비록 대신의 지위에 있었지마는 변소의 휴지를 모두 건져내 가지고 씻어 말려서 불에 사르었다.

  그리고 중국의 청량국사(淸凉國師)는 전생에 무식했는데 글을 잘해보려고 먹 묻은 종이나 글씨를 쓴 종이가 어디에 흩어져 있으면 그것을 깨끗한 데 가서 살라주곤 하며 문장이 되려는 원력을 세워 육국문장(六國文章)이 되었다. 그 후에 청량국사는 입산하여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지었다.

  밤에 자동차가 다리 위를 휙 지나가는데 급히 달려가다가 그만 사람을 치어서 그 사람이 죽었는데 다리 위가 캄캄해서 아무도 못 본 줄 알고 운전수의 조수가 그 사람을 물에 집어넣고는 달아났다. 이때 웬 총각이 위에서 보니 자동차가 사람을 치고는 그대로 물에 집어넣고 도망을 처서 자동차 번호를 적었다. 그 이튿날 순경이 와서 어떤 놈이 이렇게 사람을 죽었느냐 하고 죽인 사람을 찾아다닐 때 이 총각이 차량번호를 알려주고 이 차가 사람을 치었으니 잡으라고 알려주었다.

  자기는 사람 없는 것만 알았지 뒤에서 번호를 적은 것은 몰랐던 것이다.

  화엄경소초(華嚴經疏抄)에 보면 하늘에 이십팔수(二十八宿)가 있는데 인간의 선악을 모두 날마다 기록(일기)하여 죄를 줄 이는 죄를 주고 복을 줄 이는 복을 준다고 하였다.

  설악산에서 어떤 놈이 사람을 다섯이나 죽이고 밤에 달아나면서 집에 불까지 질러버렸으니 죽은 송장까지 집과 함께 불타버려서 알 사람도 없었는데 날마다 눈만 뜨면 죽은 사람이 나타나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자수를 했다.

  죄를 지으면 자기가 받지 다른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다. 육조(六祖) 스님이 참으로 성인인데 전생에 돈 열 냥을 쓰고 그 돈 열 냥을 갚지 못하였는데 선정(禪定) 중에 관(觀)하여 보니 전생에 돈 열 냥을 갚지 못한 그것으로서 육조스님을 죽이려고 행창(行昌)이라는 사람이 자객으로 팔려올 것을 예지(豫知)하였다. 그래서 육조 스님은 항상 돈 열량을 좌복 밑에 두고 있는데 행창이가 밤에 칼을 품고 왔다. 그때 육조 스님이 “내가 전생에 너한테 돈 열 냥을 빌려 쓰고 못 갚은 것뿐이지 목숨을 뺏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 돈 열 냥을 가지고 가거라. 이 돈은 전생에 내가 갚지 못한 돈이다.”라고 하면서  그 돈을 주었다. 그러니 자기는 육조스님을 해치러 왔는데 그것을 벌써 알고 돈 열 냥을 내놓으니 자기가 가지고 갈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원컨대 제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네가 나를 해치러 왔는데 내가 제자로 만들어 놓으면 이것을 다른 제자가 알게 되면 너는 죽어 나가게 될 것이니 그러지 말고 이 돈 열 냥 가지고 가서 훗날 다시 나를 찾아오너라.”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중에 행창이가 육조스님의 제자가 되어 공부를 잘한 이야기가 있다. 인(因)을 지으면 반드시 과(果)가 있으니 어떻게든지 나쁜 인(因)을 안 짓도록 해야 된다. 불제자는 도에 들어오는 첫 문에서 인과(因果)를 믿어야 되고 인을 지으면 과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죄악을 안 짓고 선행을 하게 된다.

  고통 없이 임종(臨終)을 맞이하자면 수행을 쌓고 선행을 많이 해야 되는데 수행을 하자면 죽기 살기로 생명을 걸고 해야지 그저 나무 칼로 목베드시 어영부영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고 공연히 수행하노라는 상만 내는 것이다. 불교(佛敎)를 믿거든 철저하게 믿어야 된다.

  옛날 중국에는 불교, 도교(道敎), 유교(儒敎) 등 각 종교가 있어서 내 종교를 믿어라 하고 서로 승강이를 하고 경쟁을 할 때 중국의 천자가 “너희들은 그렇게 승강이를 하지 말고 모두 너희들의 경전(經典)을 가지고 와서 궁전마당에 갖다 놓고 불을 질러서 타지 않는 경전이 있으면 그 교를 믿으리라”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각 종교의 경전을 다 갖다 놓고 불을 지르니 다른 것은 다 타고 불교경전은 책 겉만 약간 누렇게 눌기만 하고 타지 않았다.

  그래서 천자는 “다른 경전은 다 탔으니까 지금부터는 불교를 믿어라”라고 명했다.

  그래서 이때부터 불교경전의 책꺼풀을 누런 빛깔로 하는 것은 그때 불에 태워도 안 타고 책꺼풀만 조금 누렇게 탔다고 해서 책꺼풀을 누렇게 한 것을 황권적축(黃卷積軸)이라고 한다.

  그러니 여러분도 어찌하던지 불교를 철두철미하게 믿으면 전지전능(全知全能)이니 안될 것이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모든 경전을 불태워가며 임금과 신하가 국민에게 복이 되는가를 시험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에 이차돈(異次頓)이 불교를 위해서 순교(殉敎) 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불교가 이렇게 내려온 것이다. 사람이 다 살기를 좋아하지 죽기를 싫어하는데 자기의 목숨을 불교를 위해 바쳤기 때문에 불교가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이니 이차돈의 힘이 큰 것이다.

  수도하는 사람의 마음 쓰는 것과 행(行)을 닦으려면 먼저 마음을 비울 줄 알고 크게 발심(發心) 하여야 하는데 크게 발심하는 것은 마치 집을 짓는데 주춧돌을 놓는 것과 같다. 아무리 그 집이 웅장하더라도 밑에 깔린 주춧돌이 약하면 마침내는 그 집은 전복되고 만다.

  이와 같이 생사를 해탈(解脫)하고 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이 되고 우주(宇宙)의 빛이 되려면 큰 원력(願力)과 대신심(大信心)이 첫째인 것이다. 천하에 지극히 큰 것은 도(道)며, 지극히 공적(公敵)인 것이 진리(眞理)다. 도와 진리는 다른 것이 아니다.

  마음(心)·법(法)·불성(佛性) 이 세 가지가 모두 한 이치인데 도리를 깨치려면 여러 가지 난관이 있으니 이것을 돌파하자면 대용맹심(大勇猛心)이 있어야 한다.

  예전 성현(聖賢)들도 대장부요 나도 대장부인데 나는 과거 몇 만겁(萬劫) 동안 내 마음을 깨치지 못하고 생사에 윤회(輪回)하며 온갖 고통을 받아 왔구나 하고 대분심(大墳心)을 내여야 한다.

  공부하는 데 있어 상승(上乘)과 대상승(大上乘)의 사람들은 화두(話頭)를 가져 공부를 지어야 한다.  화두에는 의정(疑情)이 고귀한 것이니 옛 도인(道人)들도 대의정을 일키라고 하였다.

   대신심(大信心)·대분심(大墳心)·대의정(大疑情)은 솥의 세발과 같아서 참선(參禪)에는 하나만 없어도 안된다.

  출가한 사람은 출가학을 배워야 하고 세간사람은 각기 직무를 이행하여 실업(失業)이 되지 않아야 한다. 일상생활에도 도(道)가 있고 물건을 사고 파는데도 도가 있다. 우리가 인생의 참된 도를 닦아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수도를 하려면 먼저 망상스런 마음을 쉬고 비워야 한다. 도를 배우려는 사람의 마음에 망상(妄想)이 꽉 차 있으면 도를 알기가 어렵다. 마치 금속(金屬)에 섞여있는 은(銀)과 동(銅)과 철(鐵)과 연(鉛) 등을 다 빼내야 순금(純金)이 되고 세계에 통용되는 보배가 되는 것과 같다.

  또 수도하는 사람의 마음은 자기의 눈 속과 같이 맑아야 한다. 밥을 조금이라도 눈에 넣거나 금·은·유리 등 칠보(七寶)라도 그 가루를 조금 눈에 넣으면 눈병이 생기는 것과 같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눈 안에 들어가서는 용납할 수가 없다. 이렇게 깨끗한 마음으로 수도에 힘써야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씀하시기를 불속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같이 하고, 천길 우물 속에 떨어진 사람의 마음과 같이 하고 머리에 불붙은 것을 끄는 것과 같이 하고, 알을 품은 닭과 같이 하라고 하였으니 이 말씀이 지극하고 참으로 간절한 말씀이다. 불속에서 뛰쳐나오는 사람과 머리의 불붙은 사람은 무슨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 옆을 돌아볼 여가도 없다. 천 길 우물 속에 떨어진 사람은 오욕락(五欲樂)도 부모형제도 생각할 겨를이 없고 다만 우물 밖으로 나가겠다는 한 생각뿐인 것이다.

  이렇게 공부하여 삼일 내지 혹 천일에 이르러도 깨치지 못하면 내가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지겠다고 옛 조사님은 맹세하였다. 혹은 간절한 마음으로 출입을 끓고 삼 년만 공부를 잘하면 도를 통한다고 이르셨다.

  병아리를 까는 닭과 같이 하라는 말을 해석하자면 닭의 성질이 조용하지 못하고 입으로는 땅을 쪼고 발로는 땅을 긁는 짐승이다. 그러나 암탉에게 알을 안겨 놓으면 가만히 달걀을 품고 몸의 더운 기운을 알에 전하여 상속시키는 일뿐이다. 거기에는 속히 까야겠다든지 이것이 어찌 속히 안되는가 하고 걱정을 하지도 않는다. 다만 더운 기운을 이십일 일만 상속하면 병아리가 된 것을 알고 달걀 껍데기를 탁 쪼으면 병아리가 삐약 하고 나온다.

   이와 같이 수도하는 사람도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공부를 지어갈 뿐이지 속히 하여야 되겠다든지 이것이 안된다고 걱정한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가 망상일 뿐이다.

  만약 급한 생각을 일으키면 육단심(肉團心)이 동하여 심장, 간장, 신장에 화기가 일어나서 열기가 머리에 오르면 그만 가슴이 답답하고 두통이 나서 공부를 못한 게 된다. 수도인은 미리 이러한 병을 알고서 느리지도 않고 속하지도 않게 정진하며 자나 깨나 성성(惺惺)함이 앞에 나타나면 자연 지극히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는 법이다.

  비유하자면 만경창파에 빈 배를 타고 태연히 앉은 것과 같이 배가 풍파를 따라 올라가면 올라가고 내려가면 내려가되 빈 배이기 때문에 엎어질 염려도 없고 배에 앉은 사람도 마음을 비워 물은 물로 보지 않고 육지와 같이 태연히 앉은 사람 같아야 한다. 밖으로 경계에 동함이 없고 안으로 마음에 동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선정(禪定)이며 이렇게 정진(精進) 하면 결정코 시절인연이 돌아온다.

  팔월 중추가 되면 밤송이가 벌어져 아이가 흔들어도 밤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도 떨어진다. 밤이 익듯이 공부가 순숙 하여지면 결정코 시기가 돌아와 어떤 경계에 부딪쳐서 홀연히 본성(本性)을 깨닫게 된다. 사업을 하든지 국가의 중책을 가졌든지 가정에 매였든지 모두 도로써 정신수양을 하여야 한다.

  마음이 안정이 되어 물질적 고통이나 정신적 자극을 받지 않으면 마음이 안온하게 된다. 설사 도를 못 깨쳐도 그 정신이 두세 시간만 통일되면 인내력과 용기가 생기고 관찰력과 판단력이 빨라서 모든 일에 민활하고 정의감으로 처리하게 된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상벌이 분명하고 항상 낙관적이고 지공무사하여 필경 밝은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정법(正法)을 일상생활에 화(和 )하게 쓰면 참된 문화민족이 될 것이며 문명국가가 되고 복국안민(福國安民)이 될 것이다. 하늘의 햇빛은 불기운이지만 그대로 놔두면 불이 붙지 않는다. 돋보기안경으로 종이나 부드러운 쑥 위에 초점을 맛추면 불이 붙듯이 사람의 지혜(智慧)가 한량없이 많지마는 그 진실을 집중하여야 지혜의 불이 나오는 것이다.

   동양삼국(東洋三國)이 불교가 흥하였을 때 문화가 발달하였다. 문화와 문명은 마음과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비유하자면 농사짓는데 논에 모를 심어 놓으면 벼눈이 터 움이 나와서 한 이삭에 벼알이 약 이백오십 개 이상이나 붙는다. 모판에 볍씨 서말을 부어서 모를 심으면 가을에는 마흔 가마에서 예순가마의 곡식을 거두게 된다. 이렇듯이 한 사람이 희생적으로 생명을 걸고 정진하여 한번 죽는 때를 당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를 겪은 후에 도과(道果)를 얻으면 국토의 모든 사람과 우주중생이 그 덕화를 입게 된다. 이러한 결심과 인내심이 없으면 도는 아루지 못하는 것이다. 천신만고(千辛萬苦)를 불구하고 생생한 활기로 정진하여야 한다.

  사람이 겁을 내는 것은 목숨을 아껴서 그렇지 목숨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백천 번 단련하여 이 점을 잘 살펴야 한다

  風吹碧落浮雲盡 (풍취벽락부운진 : 바람이 허공에 불어오니 뜬 구름 흩어지고)

  月上靑山玉一團(월상청산옥일단 : 청산에 솟은 달은 백옥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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