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혜/경봉스님

金剛經四句偈(금강경사구게)

산울림(능인원) 2026. 1. 3. 20:37

  聲前眉語傳(성전미어전 : 소리 전에 눈썹말이 전하고)

  黙然眼微笑(묵연안미소 : 묵연히 있다가 눈이 미소 짓네)

  우리가 입으로써 말을 한다고 하지마는 눈썹이 말을 하고 눈만 껌벅하고 눈만 떠도 불법의 소식을 전하고 다 통한다. 저 청과조합에 가보면 어디 말을 하느냐. 손만 내 저으면 거기서 값이 다 나온다. 그러니 진리법문(眞理法門)이라는 것은 진리(眞理)는 무언(無言)이니 참된 이치(理致)는 말이 없고 무법가설(無法可說)이라 법(法)을 가히 설할 것이 없는 것이 설법(說法)인 것이다. 그래서 원효(元曉) 스님 법문에도 무리지지리(無理之至理)요 불연지대연(不然之大然)이라 이치 없는 것이 바로 진리(眞理)를 말한 것이다.

  오늘은 날이 너무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리고 여기에 올라왔지만 법은 일흔두 가지가 있는데 법문 들으려고 흘리는 땀은 보약 먹는 것보다 좋고 땀을 흘려서 하찮은 것을 쑥 빼버리면 몸이 개운하고 모든 병이 다 낫는다. 우리 마음 가운데에도 하찮은 마음이 붙어서 가나오나 마음이 불안한데 땀도 하찮은 것이 붙어 놓으면 몸이 괴롭고 그것을 쑥 빼고 나서 좋은 법문 듣고 한 생각 돌이키면 그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업을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지극히 성심(誠心)만 있으면 시절인연이 도래해서 깨닫는 경지에 가고 자기 목적을 달성할 그런 시기가 온다. 지극하게 남을 위해서 헌신하고 국가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자선사업을 하면 자연히 그 사람을 도와주게 되고, 또 공부하는 사람도 생명을 걸고 공부할 것 같으면 자연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소소령령(昭昭靈靈)한 마음자리가 바로 부처자리라고 가르치고 일러 주었건만 이것을 모른다. 여기 온 사람은 항상 내 법문을 들으니까 이것은 내가 못 찾더라도 내 마음자리가 부처인데 한 번 찾아보아야 되겠다는 저 세속(世俗)에 나가보면 거짓말만 하고 삿된 짓만 하고 있다.

  요즈음 여름철에 냄새나는 갈치를 씻어서 번들번들하게 해 가지고 “이것이 아주 싱싱하고 본전이 얼마인데 내가 거짓말을 하면 개작식이요” 이렇게 거짓말로 부모 욕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이 장사를 하든지 무엇을 하던지 가정을 일으킨 뒤에 남는 재산은 국가 민족과 인류를 위해 자선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원력을 세우면 아무리 욕심을 내어도 내양심에 가책(呵責)될 것이 없고 그런 마음을 먹은 사람이 남을 속이고 도적질 하고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항상 하찮은 마음을 가지고 돈을 벌어놓으면 그 돈이 나갈 때 사람 상(傷)하게 하고 집안 망치고 나가는 줄 알아야 되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이것이 바로 나인데 그것을 시간 시간마다 한 번 찾아보고 내가 나를 모르는데 자기를 발전하도록 해야 된다.

  모기나 각다귀도 어디 불만 있으면 방에 들어오려고 하고 또 물속의 고기도 아무리 미물(微物)이지만 전깃불을 바다에 넣으면 밝은 것을 보고 보여든다. 이렇게 짐승도 밝은 것을 찾는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 백천일원(百千日月) 보다 더 밝은 이것을 캄캄하게 해 놓고 앉아 있으니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마음 가운데 탐진치 삼독과 팔만사천진노심과 하찮은 마음을 쑥 빼버리면 좋은 지혜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참선(參禪)하는 사람도 성심 것 공부를 해서 지극히 고요한 데 들어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수좌(首座)가 헌 누더기 입고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공부를 해서 그 자리를 알면 천지(天地)에서 방광(放光)을 하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항상 살아도 수심과 근심 걱정 속에서 살지 말아야 한다.

   심경(心經)에 무가애무무가애고무유공포(無罣碍無罣碍故無有恐怖)라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면 공포증이 없다고 했다. 무엇인지 마음에 하나 걸려 있기 때문에 공포증이 있고 겁이 나는 것이지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아무 공포증도 없는 것이다. 밤낮 사람과 물질에 걸려서 죽겠다고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금강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凡所有相(범소유상 : 무릇 상이 있는 것이)

  皆是虛安(개시허안 : 다 허망하다)

  若見虛諸相非相(야견제상비상 : 만약 모든 상을 상 아닌 것으로 볼 것 같으면)

  卽見如來(곧 여래로 본다)

  이 천지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사람의 몸뚱이도 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 네 가지 고통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相)을 상(相) 아닌 줄로 볼 것 같으면 곧 부처님을 본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비상저도리(非相底道理)인가, 상(相) 아닌 도리인가.

  佯是許羞偸眼覰(양시허수투안처 : 거짓 달아나고 거짓 부끄러워하며 가만히 엿보니)

  竹門斜俺半枝華(죽문야엄반지화 : 대나무 문은 비스듬히 닫혔는데 반가지 꽃이 사운거리네)

  예전에 어느 선원에서 수좌(首座) 여러 명이 공부하는데 그중에 지극히 공부 잘하는 이가 매일같이 조실(祖室) 스님한테 가서 법문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했는데, 그때 다른 수좌 한 사람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문 밖에서 구십여 번을 엿듣다가 맨 끝에 요긴하게 말하는 것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 수좌한테 “보아라 내가 구십여 번이나 네가 조실스님한테 법에 대해 문답하는 것을 분 밖에서 엿들었으나 끝에 가서 가장 요긴한 말을 무엇이라고 했는지 못 들었으니 그것 좀 가르쳐 달라.” 이렇게 간절히 말했으나 가르쳐 주지 않았다. 자기는 알고 싶은데 아무리 가르쳐 달라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 그만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는데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는 칼을 시퍼렇게 갈아가지고 수좌를 눕혀 놓고 배를 타고 걸터앉아서 “내가 암만해도 너 때문에 죽게 되었으니 오늘 가르쳐 주지 않으면 너를 찔러 죽이겠다.”라고 말을 하니 배밑에 깔린 그 수좌가 하는 말이 “좀 내려앉아라. 내려앉으면 내가 가르쳐 준다.”라고 하니 칼을 내려놓고 내려앉으니 “설사 내가 이 도리를 너한테 일러 주어도 너는 쓸 곳이 없느니라.”라고 하자 그 말에 활연히 자기 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공부를 하는데 행주좌와(行住坐臥) 자나 깨나 가나오나 이렇게 해 나아가면 그 진경(眞境)에 가서는 마치 종기가 곪을 때에는 침을 가지고 째지마는 그것이 함빡 익어 놓으면 옷이나 손가락이나 어디든지 스치기만 해도 그냥 터지는 것과 같은 그런 경지에 도달하면 남이 무슨 소리를 하든지 그만 딱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도 하지 않고 그저 알려고만 하니 그것이 어디 잘 되겠느냐.

  예전에 조사스님한테 법문 들으려고 가면 화두(話頭)가 어떻고 무엇이 어떻고 그렇게 일러주지 않고 그만 한 서른 방 때리던지 벼락같은 소리를 크게 질러서 귀가 멍하도록 해서 내 보낸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하루 한두 시간쯤은 내 정신을 집중하는데 힘을 쓰고 전력을 다해야 된다. 정신을 집중할 것 같으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말의 시초만 들어도 저 사람이 나한테 무엇 때문에 저 소리를 하는지 말 끝을 다 안 들어도 알게 된다.

   부인네도 부드럽고 화(和)하고 착하고 순해야 집안이 되지 거세어서 가장(家長)이 무엇이라고 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고 이를 뿌드득 갈고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자식이 없든지 몸에 병이 있든지 돈이 없든지 가장이 일찍 죽든지 한다.

    그리고 가장되는 사람은 부인을 아껴야 한다. 부인네게 아이들 다섯 낳았으면 다석 번 죽다가 살아났고 넷을 낳았으면 네 번 죽다가 살아났으니 형편이 닿는 대로 부인에게 포상을 하는데 보석 반지를 하나씩 해주어야 한다. 보식 반지 해주어 봐야 그것을 가지고 가지고 술을 받아먹겠느냐, 떡을 사 먹겠느냐, 노름을 하겠느냐. 그것은 그대로 두었다가 아이들 교육시킬 때 궁색하면 팔아서 공부하는데 쓸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이 가장한테 보석반지를 해달라고 조르면 안 된다. 어떻게든지 가장은 부인이 고생하는 줄 알아야 되는데, 이런 큰 집을 가만히 잘  지으면 몇십 년이나 몇 백 년을 지탱하는 것은 주춧돌이 잘 배겨야 오래가듯이 부인네는 저 보이지 않는 주춧돌과 같은 것이다. 부인네도 살림살이 잘하고 여물고 똑똑해야 집안이 잘 되지 부인네가 잘 못하면 돈도 안 붙고 집안이 잘 안 된다.

 화할 화(和) 자는 벼 화(禾) 변에 입구(口) 자를 더한 것인데 벼를 찧어 술도 담고, 떡도 하고, 단술도 하고, 밥도 해서 입에 넣어주면 불평불만 가지고 있던 사람도 그만 화(和)해지게 되는 것이니 잘못된 사람이나 화하지 못한 집안이 있거든 음식을 해가지고 먹으면 그만 화해지게 되기 때문에 화할 화(和) 자가 벼 화변에 입구를 한 것이다.

  靈鷲山深雲影冷(영축산심운영랭 : 영축산이 깊으니 구름 구림자가 차고)

   洛東江濶수광청(낙동강활수광청 : 낙동강이 넓으니 물 빛이 푸르도다)

  부처님 제자는 십대제자가 있었고 기독교의 예수님 제자는 십이제자가 있었는데 예수가 십이제자를 앉혀놓고 아무리 좋은 진리를 강론(講論)을 해 주어도 듣는 사람이 딴소리로 듣는데 다만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이 기록한 것을 보면 아주 진리를 잘 표현했다.

  요한복음 첫 장을 들쳐보면 “태초(太初)에 말씀이 있었으니 말씀이 일체 만물을 지어낸다”라고 쓰여 있다. 말씀이 즉 도(道)다. 입이 들어서 말을 하느냐, 말하는 것은 곧 마음부처가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 푸른 저것이 하늘이 아니라 내가 하늘이다. 나를 믿으라, 내가 너한테 있고 네가 나한테 있다.”이 말씀이 바로 마음자리, 그 자리를 가리킨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 성경에도 내가 너한테 있고 네가 나한테 있다는 그 자리 바로 마음자리를 가르쳐 주었는데 하늘을 믿어도 마음 하늘을 믿어야 잘 믿는 것이고 불교 믿는 사람도 내 이 마음부처... 불가설 불가설(不可說不可說) 미진수(微塵數)의 부처님이 많이 있지마는 내 마음자리 부처, 심불(心佛)을 믿어야 되는 것이다.

  예전 조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 참된 것을 보았다고 하는 이는, 이것이 다 참된 것이 아닌 것을 본 것이니라, 만약 능히 스스로 참된 것이 있다고 할진대는 거짓된 것을 여의면 곧 이 마음이 참된 것이다. 스스로 거짓된 것을 여의지 못하면 참됨이 없거나 어느 곳을 참됨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성(有情)은 곧 동(動)하는 것을 아는 것이요, 무정(無情)은 곧 동하지 아니하는 것이니, 만약 부동한 행을 들을 때에는 무정이 동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나니라. 만약 참으로 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찾을 때에는 동하는 위에 부동이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이 찻잔에 물을 가득 담아서 끈으로 찻잔을 묶어 막 휘두르면 이 찻잔이 거꾸로 서서 물이 쏟아지겠지마는 원체 이것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위로해서 거꾸로 서도 물이 움직이기는 하지마는 쏟아지지 않는 것과 같다. 조사스님의 간단한 말에 진리가 다 들어있었던 것이다.

  누가 나한테 와서 “스님 나이가 몇이십니까.”라고 물으면 “전육육후육육(前六六後六六)이다.”라고 한다. 앞도 육육이요, 뒤도 육육이다. 이렇게 대답하면 육육은 삼십육, 육육은 삼십육하고 자꾸 계산을 한다. 그런 계산으로는 백 년을 해도 이것을 알 수 없는 것이다.

  日照寒光澹(일조한광담 : 해가 비치니 찬 빛깔이 맑고)

  山搖翠色新(산요취색신 : 신이 흔들리니 푸른빛이 새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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