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혜/경봉스님

삼 보(三寶)

산울림(능인원) 2025. 12. 26. 10:15

    聲前眉語傳(성전미어전 : 소리 전에 눈썹말을 건네니)

  黙然眼溦笑(묵연안미소 : 묵묵히 미소만 짓네)

  눈만 끔벅해도 거기에 법문이 있고 미소 짓는데도 법문이 있다. 우리가 진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살아야 집안이 흥하고 사업도 흥하고 나라도 부국강병이 되지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비진리 비합리적으로 살면 모든 것이 어긋나고 망하게 된다.

  우리 몸에는 삼백육십골절이 있어서 마디마다 피가 다 통하고 혈맥이 다 통하는데 조금만 어긋나면 피가 잘 돌지 않는다. 그래서 이 뼈가 삼백육십골절이 어김없이 이루져 있고 또 혈맥도 삼백이십오혈이 전부 뼈마디 가운데 모두 통해야 병이 없으며 신장·비장·간장·심장·폐장의 오장 가운데서 하나만 탈이 나면 다른 것도 다 나빠지고 병이 생기게 된다.

  예전에 한 스님이 날이 하도 더워서 조사(祖師) 스님에게 “날이 이렇게 더우니 어느 곳에 가서 청량(淸凉)을 얻어야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조사스님 말씀이 “화탕노탄(火蕩爐炭) 간에 피해라.”라고 하셨다.
날이 더운데 신선한 곳이 어디인지 바다로 가라든지 산으로 사라고 해야 될 것인데 물이 펄펄 끓고 숯불이 벌겋게 붙는 거기 가서 피하라고 한다. 그래서 “화탕누탄간이 어떻게 청량을 얻는 곳입니까?”라고 하니까 조사스님은 “화탕노탄간에는 더운 것이 없느니라.”라고 하셨다.

  우리가 덥다 춥다 하는 것도 분별망식(分別妄識)이 들어서 춥다 덥다 하지 분멸망식이 없으면 불에 집어넣어도 뜨거운 것이 없고 얼음장에 갖다 놓아도 추운 것이 없는 것이다.

  예전에 혜가(慧可) 스님이 달마(達摩) 스님에게 묻기를 “만약 어떠한 불토(佛土)를 구하려고 하면 마땅히 어떠한 법(法)을 닦아야 가장 요긴(要緊) 한 것이 됩니까?”라며 이렇게 물으니 달마스님 말씀이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法)이 모든 행(行)을 섭(攝)해 가지고 있다.”라고 하셨다.

  지금 우리가 이 몸을 끌고 다니는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물으면 어떤 사람은 마음이다 어떤 사람은 성리(性理) 자 부처자리다 한 물건이다 이렇게 별별 소리를 다 하지마는 그것이 부득이해서 하는 말이지 어디에 마음이라고 써 붙여 놓았느냐.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소소령령한 이것이 사람마다 자기 것이지마는 이것을 모르고 있다.

  예전에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기를 “너의 생명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라고 물으니 한 제자가 답하기를 “수일간(數日間)에 있습니다.”라고 답변하자 부처님이 “너는 공부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다른 제자에게 물으니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이렇게 답변하자 그때 부처님이 ”너도 공부하지 못하겠다. “라고 하시고 다른 제자에게 묻기를”사람의 생명이 어느 사이에 있느냐? “라고 물으니 그 제자가 답하기를 ”호흡간(呼吸間)에 있습니다.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그 사이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부처님께서 ”너는 공부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가 호흡만 떨어지면 그만 죽고 그것이 곧 내생(來生)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나를 모르고 자기의 소소령령한 것이 어느 곳에서 부모태중으로 왔는지도 모르고 또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가는 곳도 모르고 또 죽는 날도 모르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자다가 자기의 다리가 하도 가려워서 한참 긁다가 도무지 시원치 않아서 눈을 뜨고 가만히 보니 곁에 사람의 다리를 긁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사는 것도 전부 남의 다리를 긁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루 24 시간 중에 한두 시간이라도 내가 나를 찾는 정신통일 하는데 주력해서 살아야 밝은 지혜(智慧)가 나와서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다.

  심(心)이라고 하는 것은 만법(萬法)의 근본(根本)이라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지마는 부득이해서 마음이라고 경전(經典)에도 말을 했다.

  모든 법(法)이 일체 마음의 소생(所生)으로 되는 것이니 능히 이 마음을 요달(了達)할 것 같으면 모든 수행(修行)을 갖추어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너무도 천지만엽(千枝萬葉)으로 꼬도 피고 가지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무의 근본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뿌리가 없으면 그 나무는 죽고 마는 것이다. 우리도 이와 같아서 근본 되는 마음을 찾아야 되고 마음을 요달(了達)해야 되고 마음을 증득(證得)해야 되지 마음을 요달 하지 못하면 수행하는 것이 헛되게 되고 마는 것이니 공부를 하려고 허거든 내 마음이 청정(淸淨)하고 밝아야 된다. 어둠이 없으면 밝아지는 것이다.

  눈을 감고 밤길을 가려고 하면 앞이 어두워서 어디 갈 수가 있느냐. 그러니 이 정신을 단련시켜 가지고 마음에 광명이 나야 무슨 말을 해도 빨리빨리 잘 알아듣게 된다.

  왼쪽 눈은 해고 오른쪽 눈은 달인데 일월(日月)이 밝아서 온갖 삼라만상을 완상 하는데 나는 짐승을 보면 새가 오는구나, 까마귀가 오는구나, 까치가 오는구나 하며, 사람이 오면 사람이 오는구나 전부 다 알게 해 주는 이것이 상주설법이고, 귀는 사람소리 발소리 소소리 개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불소리 등 온갖 소리를 다 듣고, 이 귀가 구멍만 뚫려 있으면 소리가 그냥 지나가 버릴 것인데 양쪽에 수신기(受信機)가 붙어 있어서 소리가 들어오면 그것을 받아서 바로 들어가게 해 놓은 이것이 또 묘법(妙法)리고, 코는 내리 붙어 있는데 두 구멍에서 단 냄새 짠 냄새 향 냄새 등 온갖 냄새를 다 맡아서 알려주는 이것이 묘법이고, 입은 방송국이 되고 입에다가 눈감고 무엇을 넣어 주어도 짠 것을 넣어주면 이것이 간장이구나 이것이 토장이구나 이것이 된장이구나 이것은 청국장이구나 다 알고 단 것을 넣어주면 이것을 꿀이구나 이것은 엿이구나 이것은 설탕이구나 하고 온갖 것을 다 아는 이것이 묘법인 것이다. 그런데 천상인간(天上人間)에서 제일 높은 이가 세존(世尊)인데 양쪽 눈은 일월광명세존(日月光明世尊)이 있어서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고, 귀는 성문여래(聲聞如來))라 소리를 듣는 부처님이 있어서 온갖 소리를 다 듣고 나서 알려주는 이것이 상주설법이고, 코는 향적여래(香積如來)라 온갖 냄새를 다 아는 향적여래 부처님이 있어서 상주설법을 하고, 입은 법희여래(法喜如來)라 법희여래 부처님이 있어서 상주설법을 하시는데 나한테 있는 부처님의 법문은 들을 줄 모르고 어디서 법문 한다 하고 누가 말만 하면 그 말에 좇아서 다른 사람 말만 자꾸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불(佛)이라는 것은 법계불(法界佛)·본성불(本性佛)·열반불(涅槃佛)·수락불(受樂佛)·성정각불(成正覺佛)·원불(願佛)·삼매불(三昧佛)·업보불(業報佛)·주지불(住持佛)·심불(心佛)의 열 가지 부처가 있는데 열 가지 부처 치마는 불(佛)이라는 것은 별가 부처요 보리가 법이요 콩이 승이다.

  이 말은 진리적인 말인데 불교를 십 년 이십 년 믿어도 자기의 지혜의 눈이 뜨지 못하고 법안(法眼)이 열리지 못하면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하는데 이 소리를 못 알아들으면 언제 알아듣겠느냐.

  그래서 조사문(祖師門)에 들어오면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 ”마삼근(麻三斤)“ 삼베 서근이 부처란 말이고, 또 조사(祖師) 스님한테 ”부처가 무엇입니까 “ 이렇게 물으니 ”간시궐(乾屎橛)“ 마른 똥 막대기가 부처란 말이고, 또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 물으니 ”흙덩이가 부처다. “라고 하니까 ”십자로드(十字路頭)가 불(佛 )이다 “,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라고 물었는데 ”장림산하(杖林山下) 죽근 편(竹根鞭)이다 “ 장림산에 있는 대나무 뿌리를 가지고 만든 소나 말을 때리는 채찍이 부처란 말이며, 또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니까 ”중생(衆生)의 색신(色身)이 곧 불(佛)이다 “ 우리 몸뚱이가 곧 부처라 하였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흉내도 못 내는 말이다. 그러면 이 냄새나는 내 몸뚱이가 어떻게 부처냐 하고 깜짝 놀라겠지마는 진리적으로 들어가면 나한테 있는 부처를 찾으면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虛空一點眞消息(허공일점진소식 : 허공에 한 점 손가락으로 친 이 참소식을)

  宇宙人間幾得知(우주인간기득지 : 우주 인간 중에 몇 사람이나 아는가)

  내가 허공에 손가락을 가지고 한 점을 찍으면 거기에 찍은 표가 있느냐 소리가 있느냐 그렇지만 소리가 있는 것이다. 나무에 치면 나무소리가 나고 쇠에 치면 쇳소리가 나고 북에 치면 북소리가 나고 장구에 치면 장구소리가 나는 이 뜻을 우주 인간이 몇 사람이나 알겠느냐.

  一點前 是何聲(일점전 시하성 : 한 점 전에는 이 무슨 수리인가)

  阿刺刺 呵呵笑(아자자 가가소 : 아자자 우습고 우습구나)

  우리 손이 보배인 것이 우리 손은 온갖 음식과 의복과 기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천수천안(千手千眼)이라고 한다. 손이 천 개이고 눈이 천 개가 있어서 모든 중생(衆生)들을 교화(敎化)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손바닥을 탁 하고 박수(拍手)를 치는 이 한 소리에 무진진리(無盡眞理)가 있다. 수풀 속에 가서 손바닥으로 박수를 치면 나뭇가지에 앉았던 새는 놀래서 달아나는데 고기를 기르는 양어장(養魚場)의 못 위에서 손뼉을 탁 치면 고기에게 밥을 주기 때문에 전 먼데 있는 고기도 전부 몰려온다. 그리고 연설장(演說場)에 가서 치는 박수는 연설 잘한다고 해서 박수갈채(拍手喝采)라고 한다. 또 극락암 올라오는 저 냇가에 보면 총각 처녀가 궁둥춤을 추는데 좋다 좋다 하고 박수로써 박자(拍子)를 맞춘다. 이렇게 박수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다.

  天見琉璃人見水(천견류리인견수 : 하늘은 유리로 보는데 사람은 물로 보고)

  魚見玉當鬼見火(어견옥당귀견화 : 고기는 옥당의 좋은 집으로 보고 귀신은 불로 본다)

  사람은 모두 업(業)대로 몸을 받고 업(業)대로 보고 듣는데 하늘사람은 유리로 보고 물고기는 옥당을 좋은 집으로 보고 귀신은 불로 보는 것이다.

  夢裡明明有六趣(몽리명명유육취 : 꿈 가운데는 육취(六趣)가 분명하게 있더니)

  覺後空空無大千(각후공공무대천 : 깨우친 뒤에는 대천세계 텅 비었네)

  어느 촌가(村家)에 복 없는 사람이 아주 깊은 심심산골에 시집을 가서 먹을 것이 없어서 화전(火田)도 갈고 나물도 뜯고 또 없는 사람이 고(苦) 받으려고 아기들은 수두룩하게 낳아서는 그것을 먹여 살리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데, 사월 초파일날에 통도사에 가면 좋다고 해서 보리밥 한 그릇 담고 토장에 장아찌 좀 넣어 가지고 시퍼런 수건에 싸서 허리춤에 매 차고 통도사에 들어오니 백옥 같은 물이 흐르고 산에서는 소나무 잎 냄새가 향긋하게 코에 들어온다. ”좋다 좋다 “하고 궁둥춤을 추고 들어오는데 한쪽 손에는 작대기를 들었다. 이는 빠져서 밥 먹을 때에는 아래턱이 코를 치는데도 그저 좋다. 저 무풍교(舞風橋)를 건너 들어오는 이 경치가 어떻게 되고 하니 이렇다.

  四面靑山中大路(사면청산중대로 : 사면은 청산이 둘렸고 가운데는 큰길이 통해 있는데)

  一邊流水上白雲(일변유수상백운 : 한 가에는 백옥 같은 물이 흐르고 위로는 흰구름이 떠도네)

  우리가 부모태중에 올 때도 한 물건도 가져온 것이 없고 죽어서 호흡이 떨어질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가는 것이 없고 이 세상에서 선업(善業)이 그림자 같이 따르고 악(惡) 한 것을 했으면 악한 업이 그림자 같이 따라다니는 것이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마음이 청백(淸白)하고 백천일원(百千日月)과 같이 밝은 그 자리를 어디든지 애착(愛着)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애착을 붙이면 죽어서 가장(家長) 되는 사람은 마누라를 찾아다니고 또 부인네는 가장을 찾아다니고 또 자식에 애착이 있으면 죽어서 자식을 찾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어느 목수(木手)가 죽어서 대목이 하는 일이 없는가 하고 일거리를 찾아다닌다. 귀신이 일거리를 찾아다니니 무엇이 있겠느냐. 그래서 꿈에 자기 마누라에게 말하기를 ”봐라 내가 일 하려고 일거리를 아무리 찾아다녀도 일거리가 없다 “고 한탄하더라 하니 여러분들도 애착이 붙어 있으면 죽어서 갈 데도 못 가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옥(伯玉)과 같이 걸림이 없고 무가애(無罣碍) 무가애(無罣碍)이니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무유공포(無有恐怖)라 공포증(恐怖症)이 없게 된다. 이것이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있는 말이다.

  月浮野水光明藏(월부야수광명장 : 달이 들물을 비추니 빛이 물에 어리고)

  蘭吐春山古佛心(난토춘산고불심 : 난초는 봄산에서 옛 부처의 마음을 토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