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마당/내 이야기

원인을 알면 편안하다

산울림(능인원) 2024. 6. 21. 10:00

  인생(人生)은 어디서부터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온 곳도 모르고 갈 곳도 모르는 가련한 우리 중생을 위하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49년간이나 설법 교화했다.

  사람들은 어째서 각기 다른 곳에서 천차만별로 태어나게 되었을까. 어째서 늙고 병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참으로 답답하다, 또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가지 신경 쓸 일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이런 것들을 안 받거나 덜 받고 세상을 편안히 잘 살 것인가 이런 것이 문제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인데 그중에서 불교가 이런 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석가모니 불법을 따르다 보면 생사(生死) 문제 즉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답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이 사는데 무엇이 제일 중요할까.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가 중요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태자로 태어나 장차 큰 나라의 왕이 될 텐데 그런 자리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출가하여 설산수도 6년 만에 크게 깨치시고 부처님이 되었다. 그리고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이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성불케 하려고 팔만대장경을 설하셨다.

 오늘날에 있어서 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하나 생각해 보기로 하자.  사람이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몸’이 태어난 것인데 마음이 영혼이 태어난 것은 아니다. 마음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많은 사람들은 태어났다고 하면 아주 없던 것이 새로 나온 것같이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 몰라서 그렇다고 본다. 육체만 태어난 것이지 이 마음(영혼)은 원래부터 즉 무한한 과거로부터 살아왔다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이따금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보는데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이 씨 집안이나 김 씨 집안에 어떻게 생긴 아들이나 딸로 태어나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태어났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만일 태어나고자 하여 태어났다면 왜 하필 그렇게 태어나겠는가? 더 잘 태어나지도 않고 더 못나지도 않고 또 그 많은 사람 중에서 그분을 아버지 어머니로 만나야 하느냐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 연유와 원인은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다 전전생 살아오면서 내가 다 그와 같은 이연을 지어서 그렇다는 것이 바로 불교에서의 대답이다 그래서 그 이유와 원인이 나한테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낳는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그렇게 된다면 장관 재목이 되는 훌륭한 아들, 대통령 재목이 되는 아들을 낳고 싶어 한다고 해서 그렇게 낳아질까? 태어나는 사람도 마음대로 못하고 낳는 사람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다. 그저 인연 따라 받는 것이다.  흔히들 오다가다 옷깃을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라 하고 한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정도면 500 생의 인연이라고 한다. 부모자식 간에 인연이 되는 것은 몇 천만 생의 인연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지중한 인연에 의해서 한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하거나 누구 탓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부모를 잘못 만났다고,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고 부모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전부 내 탓이므로, 그렇게 되면 죄만 더 짓게 된다.  친척이 되는 것도, 한마을에 같이 태어나는 것도 다 인연이다. 하나라에 같은 국민이 되는 것도 인연이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도 인연이라 했다. 인연이 아닌 것이 없다. “불신 인과는 죄”라는 인과를 믿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이다.

   그다음 사람이 늙는 것도 늙고 싶어서 늙는 것이 아니다. 병들고 싶어서 병드는 사람도 없다, 또 죽는 것도 자연히 죽는 것이지, 죽는 날 받아 놓고 죽는 사람도 없다.  늙는 것도 몸뚱이가 늙는 것이고, 크는 것도 몸이 크는 것이지 진짜 “나”인 마음은 크는 것도 아니고 늙은 것도 없다. 사람이 20 살 되었을 때 한강물을 본 것도 60세 되었을 때 한강물 보는 것이 다를까? 본 느낌은 같다 몸이 늙었기에 늙은 채 했을 뿐이다.

  구장부득장(求長不得長)이요, 두단부득단(求短不得短)이니라, 길고자 해도 길 수 없고 짧고자 해도 짧을 수 없느니라, 잘되고자 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요, 못되고자 한다 해서 못 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고 내가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전생부터 지은 대로 받는 것이다. 또 반대로 내가 하루 밥 세끼 정도는 먹고사는데 갑자기 망해서 거지꼴이 되면 어찌하나 하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내가 전생부터 하루 밥 세끼 먹을 정도는 지어놨다면 망하라 해도 안 망하고 그 정도는 되는 것이다. 단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결과가 잘되고 못 되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어떤 사람이 욕을 하고 덤비거나 손해를 끼쳐도 우연이 아니다. 다 내가 전생으로부터 현재까지 그만한 잘못이 있기에 그 빚을 갚느라고 그런 일이 닥치는 것이다. 무조건 액운이 닥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빚 갚는 것이라 생각하고 달게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아하, 그렇구나! 내가 전생의 죄업으로 현재의 고통을 받는 것이니 전부 내 탓이구나 하고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지내야 지은 죄를 갚는 것이 되며 마음이 편해진다.

  이 세상에 미운 사람 원망스러운  사람은 하나도 없어야 한다. 미운 생각이 있기만 하면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다 용서하고 나면 마음이 시원하고 편해진다.

  인과를 확실히 믿고 그러려니 하고 살면 편하다.

'얘기 마당 > 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의 문제 해결  (105) 2024.06.25
병의 원인과 치료  (76) 2024.06.23
최후의 설법  (68) 2024.06.18
마지막 제자  (46) 2024.06.16
최고의 제자(2)  (50) 2024.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