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의 나들이/나들이 지혜

제주에서 15일(고호의 정원, 생각하는 공원)

산울림(능인원) 2021. 12. 25. 13:23

  이번 제주 여행은 힐링을 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뒤를 돌아본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안단테 여행을 즐기고 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고흐의 자화상을 보라는 말이 있다. 고흐가 그린 자화상을 한 단어로 표현 한다면 아마도 '고통'이 아닐까? 고통은 고흐의 삶 전체를 집약하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고흐는 서른일곱의 나이로 권총 자살을 하기 전에 "고통은 영원하다"(La tristesse durera toujours)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삶이란 본래 고통의 연속인 것일까?  고흐는 렘브란트 다음으로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40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죽기 얼마 전인 1885~1889년 사이에 그린 것이다. 완성된 작품의 수를 헤아려 보면 1887년

  여름이 가장 왕성하게 창작했던 시기다. 당시 처음으로 파리에 도착한 고흐는 외부 세계에서 방향을 바꾸어 내면의 자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내면세계를 끊임없이 파고들었고 이를 통해 마음속의 감정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고흐는 자책감과 자학적인 행위로 내면의 고독과 불안을 쏟아냈다. 그의 열정은 흥분과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졌고 조급한 성격과 직설적인 언사로 늘 사람들과 떨어져서 외톨이로 지냈다. 불과 몇 년의 시간 동안 그가 무려 40여 점의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자아를 해부하고 탐색했는데 그럴수록 불안과 고독은 더욱 깊어졌다.

  〈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은 1886년 봄에 그린 것이다. 이때 고흐는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처음으로 파리에 도착했다. 이 그림은 그의 초기 작품으로 조형에 비교적 짜임새가 있다. 화가는 두상을 화면 왼쪽에 치우쳐서 배치했고 삐딱하게 문 파이프는 화면 오른쪽의 공백과 힘의 균형을 이룬다. 이 그림은 고흐가 그린 자화상 가운데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고흐는 불과 서른세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림 속 남자는 중년을 훌쩍 넘겨 보인다. 파이프와 덥수룩한 수염이 그를 훨씬 나이 들어 보이게 한다. 프랑스 아를, 밤의 카페를 그린 그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고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는데 제주에서 고호를 보니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생각하는 정원은 수백여점의 분재가 오름과 물을 모티브로 한 자연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2007년 분재예술원 개원 15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태어나고, 세계적인 정원으로 나아가고자 생각하는 정원으로 정원의 이름을 정식으로 바꾸었다. 생각하는 정원의 역사는 1963년 성범영 원장이 제주에 첫발을 디디고 돌투성이 불모의 땅을 일구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이다. 황량한 불모지에 꽃 피운 한 농부의 혼불이라는 점에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실제 세계명사들이 가장 많이 다녀간 명소이다.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의 방문과 후진타오 주석, 북한 김용순 노동당 비서, 일본 나까소네 총리대신 등 외교사절과 국내외 명사들의 방문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현재 이곳에는 400여 점의 분재가 전시되어 있으며, 제주 화산석으로 쌓은 돌담과 돌탑, 정원 내에 시원하게 쏟아지는 제주 최대의 인공폭포, 또 하나의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커다란 잉어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연못 등의 공원 시설이 잘 가꾸어져 있다. 현재는 성범영 원장의 아들이 운용하고 있다는데 식당과 상점들을 배치하여 과거와 다른 상술 때문에 조금은 인상을 찌푸려야 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