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성 관광을 마지막으로 다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버스채 실고 홍해를 건너는 도선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관광객이지만 터키인들이 많았다. 이번 여행에 함께했던 선배분과 자리를 함께 했으나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터키 육군 대위가 옆자리에 앉으면서 말을 걸어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육군 대위이며 앞으로 꿈이 한국의 육군대학에서 전투발전(battle development)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155mm 자주포를 수입하여 동부전선에 배치 했는데 시리아와 교전시 사용했는데 인접국가들이 그 위력을 보고는 도발을 완전히 멈추었다고 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 삼성 캘럭시 및 TV등이 터키에서 최고 인기 상품이라면서 한국에 대해 제법 아는체 한다. 자신의 이름이 제이민인테 빠르게 발음하면 재민으로 한국식 이름이라고 한다. 이스탄불 노아호텔에 여장을 풀고 이른 석식을 하고 난 후 우리는 아울렛 매장에가서 쇼핑도 하고 벨트도 구입하고 터키에서 맛들린 트리키쉬 카흐베를 한잔하고 늦게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우리는 조금은 그렇지만 공동묘지 언덕을 찾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 쉽게 오를 수 있지만 터키의 묘지문화도 볼겸 걸어서 언덕에 올라 그 유명한 Pierre Loti Kahvesi를 찾았다. Pierre Loti는 프랑스 해군장교로서 터키에서 한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귀국후 그 연인과 함께 살기위해 모든 것을 정리하여 다시 터키를 찾았으나, 그 여인은 유부녀로 부인이 바람난 것을 알게 된 남편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Pierre Loti 는 터기에 돌아온 이후 그여인을 찾아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찾을 수 없게 되자, 바로 이 언덕에서 그 여인을 그리면서 그여인과 있었던 추억을 되새기면서 시와 소설로 다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되는데 이 작품들이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그 여인을 잊지 못하고 바로 이 언덕에서 끝까지 그 여인을 그리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Pierre Loti(1850 ~ 1923)의 애뜻한 사랑의 이야기를 기리기 위해 이 곳에 찻집을 만들어 그 당시 Pierre Loti의 글속에 있었던 여인과 그의 사랑을 기억하고 상상하는 장소가 되었단다. 현재도 프랑스인들은 이스탄불 관광시 반드시 이곳을 찾아 커피한잔속에 Pierre Loti를 연상한단다.
우리도 이곳에서 트르키쉬 카흐베 한잔과 내만을 들락날락하는 배들을 바라보면서 100년전에 이루지 못한 애뜻한 Pierre Loti의 사랑을 상상해보니 이곳의 풍경 하나하나가 새롭게만 느껴졌으며 특히 저녁 노을이 곱게 내만에 깔리면 그사랑이 살어서 돌아 올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약 1시간 30분동안 우리는 보스프러스해엽을 유람선을 타고 한바퀴 돌았다. 유럽과 아시아를 갈라 놓은 물길, 이곳은 우리의 삼청동 부자들이 사는 것처럼 이스탄불 부자들이 살고 있고 또한 그들이 타고 다니는 쾌속정을 바라보면서 빈부의 차이가 너무 심함 이스탄불을 생각하면서 쓸쓸하게 웃어도 보았다.
다행히 바로 옆에 독일인 할머니 2분이 여행을 오셨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신들은 독일 뮨휀대학에서 사회학 및 인류학 교수로 근무하다가 정년 퇴직후 틈틈이 논문감수 등을 하면서 돈을 모아 2 ~ 3개월에 한번씩은 해외여행을 다니는데 한국에도 2번 다녀갔단다.
그들은 얼마전에 한국에 와서 보니 극단적 사회운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단다. 또한 복지 포풀리즘에 한국민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타까웠다고 했다. 복지사회는 놀고 먹는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사회주의가 퇴조한 가운데 사회주의 운동이 만연된 곳이 한국이며, 독일은 공산주의중 가장 잘사는 동독과 통일을 하고서도 20년이 넘도록 댓가를 치루고 있는데 한국은 지상에서 가장 못사는 북한과 통일을 해야되는데 독일 보다 통일 비용도 100배는 더 들어갈 것으로 판단되나, 통일 비용 마련에는 관심이 없고 그져 복지 확대에만 정치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스의 경우는 월 60시간 근로시간이 많다고 시위를 하다가 도산을 당했어도 그리인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시위 하는 것을 볼 때는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했다.
또한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서는 엄청난 반일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를 통한 일본인들의 수탈 행위에서 기인 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일본에 비해 중국에 대한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단다. 중국은 상고시대부터 중세조선왕조 시대까지 많은 물품(조공)을 바치고 고려왕조에서는 여인들을 스스로 차출 하여 노비로 보냈으며, 중국으로부터 왕이 바뀌면 허락을 받아야 왕권이 유지 되는 등 엄청난 핍박을 받았음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는 한국민들이 이상하단다.
특히 마지막 남은 해저자원 확보 차원에서도 제주 해군기지는 필요한데 이를 반대하는 한국민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으며, 중국과 북한은 상호주의에 의해 주고 받는 식의 거래를 해왔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북한을 지원한 남한 보다는 체제 붕괴시 자연스럽게 중국이 북한을 접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 했다. 실로 많은 것을 독일 할머니들 한테 배운 계기가 되었다. 역시 학자들의 사고와 생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었다. 짝사랑의 허망함을 누가 알까? 당해보지 않으면 아품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도 더이상의 소모적인 사회 운동이나. 말장난을 그만두고 진정한 우리민족 우리나라를 살리는 이야기만 했으면 좋으련만..................!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울달아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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