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김씨 뿌리/나의 뿌리

김천일(金千一)의 아내 양씨

산울림(능인원) 2011. 7. 1. 21:14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몇 년 전이었다. 한양의 김씨 가문에 저 시골 무주구천동의 한 처녀가

시집을 왔다. 옛날에는 여자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이 없고, 다만 아버지의 성을 따라서 [양씨]

라고만 알려졌다. 그런데 이 양씨 부인은 참으로 특이한 사람이었다. 예쁘고 부지런하며 또한

남자들도 만만히 대할 수 없는 위엄과 고집이 있었다.

   양씨는 매일 아침에 조상의 사당에 드리는 제삿상을 차리라는 명령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허식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양반은, 더구나 여자는 뛰거나 집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 이 양씨는 비가 오거나 바쁘면 뛰어가기를 예사로 했고, 무슨 일을 할 때에는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덤벼들어  해 치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이 시부모에게는 질색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종들에 대한 처우였다.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하지 않고, 존댓말을 써서

시부모들은 그렇게 하면 버릇이 없어져서 못쓴다고 번번이 나무랐지만 듣지를 않는다. 양씨는

도대체가 [종]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도 다 똑같은 사람이니 대등하게 대해주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씨 집안이 물러서 그랬는지, 양씨가 강해서 그랬는지 얼마 아니하여 결국 이 집안의

주도권을 양씨가 쥐게 되었다. 차츰 형편을 살피던 그녀는 어느 날 온 집 식구들과 종들을 불러

모아놓고 일대 결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 집에는 종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자유인이니 독립해서 사십시오.”

   그러자 종들은 아연 실색하여 매달리는 것이었다.

 “아이구 아씨마님, 우리에게 어디로 나가서 어떻게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차라리 우리를 보고

죽으라는 것이 낫지요. 그런 말씀 마시고 그냥 우리를 댁의 종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내 말을 따르겠습니까?”

  “거두어만 주신다면 무슨 말씀인들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세요. 나의 친정이 무주구천동인데 이제부터 내가 나누어주는 자본과 소를

갖고 그리로 다 같이 가세요. 그곳에는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넓은 농토가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 매년 먹고나서도 백 가마 이상의 곡식이 남을 것입니다. 그것을 창고에 잘

보관해 두세요. 적당한 때가 오면 우리가 가서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그리고 또 대나무를 많이

심어놓으세요.”

  “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집안의 종들을 다 시골로 보내고, 자기 집 식구들은 몸소 나서서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무술을 연마하게 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십년 가까이 하였을 때 왜군들이 우리나라에 침입하였다. 경상도를 위시로 하여 전국이

쑥대밭이 되었다. 나라도 이 난국을 해결하지 못하고 임금은 의주로 줄행랑을 치게 되었다. 이

즈음에야 양씨는 남편 김천일을 독려하여 의병을 일으키게 하였다. 무주구천동의 농사꾼들을

중심으로 하여 큰 무리들이 모여들어 의병 군단을 이루었다. 식량은 넉넉히 준비 되었고 그간

준비한 농기구와 대나무는 무기로 변하였으며, 노동으로 단련된 농부들은 자기의 땅을 지키기

위하여 김천일 장군의 휘하에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큰 공을 세웠는데

그 뒤에는 [양씨]라는 한 여인의 지혜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