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혜/경봉스님

네가지 큰 지혜(智慧 : 경봉스님 법문중에서)

산울림(능인원) 2025. 10. 17. 11:55

  天共白雲曉(천공백운효 : 날은 흰구름에 어리어 새고)

  水和明月流(수화명월유 : 물은 밝은 달을 안고 흐르네)

  법문을 말과 글을 떠나서 들어야 참 법문을 듣는 것이다. 말과 글을 떠나서 눈만 깜짝하고 손만 한 번 들어 아는 것이고, 법사가 주장자를 한 번 처도 모두 알아야 한다.

  날은 흰구름에 어리어 새고, 물은 밝은 달을 안고 흐른다는 이 질지 않은 게송에 팔만장경의 의지가 여기에 담겨 있다.

  지혜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 대원경지(大圓鏡智)이니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이 삼라만상을 비추고 세상의 만법을 비추는 이 대원경지는 사람마다 자성(自性)이 청정하여 담연공적(湛然空寂)한 그 자리가 바로 대원경지이니 담담하기가 백천일원(百千日月)과 같이 맑고 밝으며 비고(空) 고요한 자리이다. 일상생활가운데 이 생각나고 저 생각이 일어나는 산란한 망상도 정신을 집중하는 공부를 쌓여가면 지극히 고요한데 들어갈 수 있으니 그것이 공적(空寂)이다. 지극히 고요하고 맑은 분별없는 동심(童心)에서 묘경(妙境)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대원경지는 뚜렷이 밝아서 요동이 없는 것이다.

  지구가 빨리 돌고 있지만 움직이는 가운데 움직이지 않는 도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만물이 가만히 서 있듯 보이는 것이다.

  불의 본성(本性)은 뜨거운 것이고 물의 본성은 젖는 것이며 소금의 본성은 짠 것이며 사람은 느껴 아는 것이 본성이다. 이 본성이 육근(六根)과 육식(六識)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분별의 습관과 때가 묻을 염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본래 청정한 본성자리를 이러한 방편으로 닦아야 한다. 생엿을 손으로 만지면 손에 묻고 옻칠을 하자면 손에 묻으니 생엿을 만질 때에는 밀가루를 바르고 옻칠을 할 때에는 참기름을 바르고 만지면 붙지 않는 것처럼 육근 육식의 때를 묻히기 전에 마음을 비울 줄 아는 지혜가 있으면 그것에 물들지 않는다.

  둘째는 평등성지(平等性智)이니 사람마다 평등한 성지가 있는데 이 평등한 성지를 가지고 있으면 마음에 병이 없다. 사람이 왜 늙는가 하면 마음에 병이 있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것이다. 이 병 때문에 늙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오장, 즉 심장·간장·폐장·비장·신장이 있는데 심장이 병이 들면 오장이 모두 탈이 나게 된다.

  이 마음에 병이 없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육근 육식이 모든 것을 대하여도 사랑하고 비워하여 취하고 버리는 증애취사(憎愛取捨)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대단한 수행을 쌓지 않으면 이 증애하여 취사선택하는 분별망상에 초연(超然) 하기 힘든 것이다.

  이 증애이성(憎愛二性)이 공하면 평등한 성지를 얻게 된다.

  부처님께서 일체의 법이 본래 공한 줄 아시고 모든 중생이 평등한 줅 아셨다.

  성불(成佛)한 사람만이 이 자성(自性) 자리가 평등한 것이 아니고 일체중생이 모두 평등한 줄 아시고, 이해할 수 있는 지적(知的) 능력에 따라서 설법을 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평등한 자리에 증입(證入)케 하였으니 이 이름을 평등성지라 한다.

  이 법문을 듣는 모든 분들이 모두 부처와 샅은 평등한 성지(性智)가 있지만 막힘이 있고 걸림이 있어서 평등성지에 들어가지 못하나 수행을 쌓아서 장애를 제거하면 평등성지를 구현할 수 있어서 만법이 유통하게 된다.

  셋째는 묘관찰지(妙觀察智)이니 묘관찰지란 비공(非功) 즉 힘을 들이지 않고 보는 것이니 이 지혜는 제근(諸根)의 경계에 능히 들어가서 분별을 잘하되 어지러운 난상(亂想)을 일으키지 아니하여 걸리고 막힘이 없는 자재(自在)함을 얻게 됨으로 이를 묘관찰지라 한다.

  육근(六根)으로 모든 일을 대할 때에 능히 잘 분별한 줄 알아야 일 처리가 지혜롭게 잘 되는 것이며, 염불이나 참선을 할 때 순수한 동심으로 정진해야지 산란하게 마음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묘하게 관찰하는 지혜로써 만법을 관찰하고 만사를 관찰하고 만사를 관찰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능히 잘 관찰하시어 모든 법을 둥글고 막힘 없이 차례대로 중생의 근성을 알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즐거워하는가에 따라 막힘이 막힘이 없는 무애(無碍)한 변재(辯才)로써 온갖 오묘한 법을 말씀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대안락(大安樂)에 들어가게 하였으니 이 이름이 묘관찰지인 것이다.

  육식(六識)과 칠식(七識)의 뚜렷한 행자를 관찰하고 연마하면 순숙(純熟)히 하면 사물을 대함에 헤아림을 건네지 않고도 단박에 관찰이 명백해지니 힘들이지 않고도 알 수 있으므로 묘관찰지를 비공성(非功成)이라고도 한다.

  넷째는 성소작지(成所作智)이니 농사를 짓든지 상업을 하든지 그때그때 당면한 현장상활에 따라 묘하게 관찰하면 곧 지혜가 생기니 이것을 성소작지라 하는데 이는 곧 대원경지와 같은 것이다. 우리들의 감관(感官)인 제근(諸根)으로 하여금 일에 따라서 응용하여 지혜로써 움직이면 어긋남이 없다.

  눈으로 보든지 귀로 듣든지 육 근(六根) 가운데 어떤 것을 받아들일 때 정수(正受)로써 바르게 받아들여 이상(二相)이 없는 것이 성소작지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그 마음을 즐겁게 이롭게 하기 위하여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널리 여러 가지의 신통변화를 보여 성도(聖道)에 들게 하였다.

  모든 중생의 원력(願力)에 따라 그 소원을 이루게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성소작지라 한다.

  이 법문을 듣는 모든 분들은 집에 돌아가거든 나이 많은 이는 지금까지 몇십 년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아라. 나는 남에게 어떤 일로써 무엇을 이롭게 즐겁게 해 주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또 내가 이 세상을 얼마나 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젊은이들도 이 세상에서 나는 남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좋은 일을 했는가를 반성해 보고 또 이 세상을 얼마나 살다가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