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혜/경봉스님

應無所住(응무소주 : 경봉스님 법문중에서)

산울림(능인원) 2025. 10. 8. 09:00

  법문은 종사가 법상에 오르기 전에 다 되었고, 법문을 들으려는 대중이 자리에 앉기 전에 다 마친 것이다. 이도리를 알면 된다.

  말과 글로 설법을 듣는 것을 다문(多聞)이라 하고 말과 글을 떠나서 법문을 듣는 것을 구족다문(俱足多聞)이라 한다.

  부처님이 사십구 년간 설법을 하셨는데 나중에는 양산회상(靈山會上)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꽃 한 송이를 인천대중(人天大衆)에게 들어보였다. 거기에는 무슨 말과 글이 어리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 몸을 얼마나 유지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나 하고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한 오륙십 년 전에만 하더라도 편균적으로 오육십 년 살기가 어려웠다.

  환갑을 맞는 노인을 보면 “아따! 그 노인 참 오래도 사는구나”하고 감탄할 정도였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한 십여 년은 더 늘어난 것 같아서 예전보다 많이 장수를 하는 것 같은데 그대도 육십 전에는 죽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 법회에 승속(僧俗)이 많이 모였는데 이토록 많은 대중이 백 년만 지나면 서로가 다 어디에 가 있는지 행방조차도 알 수 없고 얼굴 또한 볼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덧없는 것이 우리의 일상에 늘 부딪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이 몸은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풀 끝에 이슬과도 같고 번갯불과 같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허망한 가운데 허망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무엇이 허망하지 않은 물건인가.

  옛 조사도 말씀하시기를

  “한 물건이 사람 사람에게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명자(名字)도 없고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며 천지보다 더 크고 해와 달보다 더 밝으며 검기로는 칠 통보다 더 검은데 이러한 물건이 우리의 해주좌와(行住坐臥)와 어묵동정(語默動靜)의 일상생활하는 데 있으니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라고 하셨다.

  그러니 하루 이십사 시간 가운데 아홉 시간 일하고 여섯 시간 잠자고 다섯 시간 놀면 네 시간이 남는데 이 네 시간 남는 시간을 정신 통일하고 집중해서 이 알 수 없는 이것을 참구(參究)하는데 처음에는 잘 되지 않는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물 흘러가듯 자꾸만 생각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져가면 정신통일하는 묘를 자연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연극 한바탕 멋들어지게 하다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멋들어지게 하는 것인가. 가령 연극배우가 비극의 배역을 맡았다 하자. 그 배우가 마음 가운데 딴생각을 다 비우고 자신이 극 중 배역과 혼연일치가 되는 연기라야 감명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사바세계에 와서 우리가 맡은 배역대로 연극을 잘하려면 우선 물질에 대한 지난 친 애착과 사람에 대한 애착을 비우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는 것이다. 물질 아니면 사람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 우리가 사바세계에 나올 때 머리 아프고 가슴 아프려고 나온 것이 아니다. 빈몸 빈손으로 옷까지 훨훨 벗고 나왔는데, 공연한 탐욕과 쓸데없는 망상으로 모든 근심 걱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누구를 해칠 생각이 있나 무슨 근심 걱정이 있었겠나. 그러한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올바른 진실대로 자기 정성대로 노력하기만 하면 세상은 될 만큼 되는데 올바르지 못한 진리적이 아닌 망상이란 도둑놈 때문에 근심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전 일본에 대산청만(大山靑巒)이라는 문학박사 한 분이 이었다. 그분에게 늙은 하녀가 있었는데 병자를 앉혀 놓고 뭐라고 중얼거리기만 하면 병이 금방 낫곤 한다. 박사가 생각하니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가관이었다. 미신인 것만은 분명한 듯한데 병이 완쾌되니 말이다.

  그래서 하녀를 보고 무엇을 아르더냐고 물었다.

  그 하녀는 “오무기 고무기 이소고고 오무기 고무기 이소고고”라고 한다고 대답한다.

  이 말을 듣고 박사가 생가해보니 오무기는 보리요 고무기는 밀, 이소고고는 두되 다섯 홉이란 말에 병이 나을 까닭이 없는데 병이 잘 낫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이 되었다.

  일본에서 문학박사가 되자면 불교를 모르고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교의 경전에는 문학과 너무나도 관련 깊은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박사가 금강경(金剛經0을 보았는데 경 가운데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즉 응당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낸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육조 혜능대사(六祖 惠能大師)도 다른 사람이 금강경을 읽을 때 이 구절을 드도 도를 깨달았던 것이다.

  이 구절의 일본 발음이 “오무소주 이소고싱”인데, 누가 이 말을 하는 것을 곁에서 듣고 잘 못 외워서 “오무기 고무기 이소고고”라는 비슷한 말을 늘 외운 것이다.

  박사가 하녀에게 외우는 것이 잘못되었으니 다시 외우라고 고쳐 주자 하녀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다음부터 환들에게 그것을 외워보니 그것이 진짜이지만 병은 낫지 않았다. 그래서 보리 및 두되 다섯 홉이든지 무엇이든지 “오무기 고무기 이소고고”라고 또다시 바꾸어서 읽으니까 그제서야 병이 낫는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박사가 발해준 것은 진짜이지만, 많이 외우지도 않았고 또 이렇게 하면 정말 병이 나을까,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의심이 나서 그런 것이다.

  화엄경에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어머니라 모든 성현의 법을 길러낸다고 하였다. 믿음 거기서 모두가 이루어진다.

  유물선천지(有物先天地 : 한 물건이 있는데 천지보다 먼저요)

  무형본적요(無形本寂寥 : 형상이 없어 본래 고요하도다)

  능위만상주(能爲萬像主 : 능히 만상에 주인이 되고)

  불축사시조(不逐四時凋 : 사시절을 따라 마르지 않는다)

  장부개유충천지(丈夫皆有衝天志 : 장부에겐 누구나 하늘을 찌를듯한 기개가 있거니)

  북두남성배면간(北斗南星背面看 : 북두와 암성을 등을 지고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