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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사(鳳泉寺) 개미취 꽃

산울림(능인원) 2024. 9. 15. 10:00

  경북 문경시 호계면 봉서 2길 201에 위치한 봉천사는 조그만 암자였으나 현재의 주지 스님이 오시면서 이곳에 국사당(國祀堂)을 짓고 경북 문경에서 활약하던 호국 8 영웅을 기리는 사당으로 애국 교육의 장으로 문을 열고 사찰 주변에 개미취를 심고 가꾸어 매년 9월이 되면 꽃이 만발하면서 불교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아름다운 꽃을 관람할 수 있는 관광지로서 명성을 얻고 있는 사찰이다.

8 영웅들을 살펴보면

  김고로(재위 : 42 ~ 157)

  문경 함창 고녕 가야국 시조로서 상주 문경 함창을 기반으로 낙동강 중상류 지역에 최초로 고대국가를 건국하였으며 함창 고녕가야는 육가야의 하나로써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고 고로 왕릉, 왕비릉, 고분군, 남산 고성, 공갈못, 성혈석 등 유물유적이 현조하고 있고 일제 강점기 식민학자들의 간계로 역사를 지우려 했지만 고녕가야선양회를 중심으로 역사복원활동이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

  김유신(595 ~ 673)

  본관은 김해 오늘날 충북진천에서 출생하여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현왕의 증손이며, 무열왕 김춘추와 함께 삼국통일의 영웅으로 태대각간에 오르는 인물로 나당전쟁을 용주벌(현 용궁)에서 치렸으며 점촌과 함창 접점인 당교에서 소정방을 비롯한 당군을 소탕하고 최초로 삼국통일을 완성한 장군이다.

  왕건(877 ~ 918)

  고려국 태조로서 초년에 궁예에게 의탁했다가 부하들의 옹립으로 철원에서 후고구려를 건국, 용주벌에서 견원과 전투를 벌였으며, 산양 근품산성에서 접전, 공산전투에서 견원에게 대패하고 안동 복주전투에서 크게 이기에 됨으로써 경순왕의 항복과 견원의 복속으로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시조였다.

  견휜(867 ~ 936)

  문경 가은읍 제악산 기슭에서 아자개 아들로 출생하여 무진주(현 광주)에서 궐기하여 전주를 도읍으로 후백재를 건국하였고 후삼국 중 최고의 맹장이었으나 내분으로 아들에 의하여 금산사에 유폐된 왕으로 왕건과 용호쟁투를 벌였으나 항복하고 일리천(선산) 전투에서 아들인 신검을 물리치고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도움을 준 후백재 왕이었다.

  홍지선사

  고려시대 상주 은척 황령사의 승려로써 몽고군의 침략을 맞아 최초로 승리한 상주산성 전투의 승병장으로 상주 백화산 백화산성은 삼국통일의 성지이며 문경지역 호국의 영지이다. 태종무열왕의 정신을 이어받은 홍지선사는 몽고대군을 맞아 수많은 승려들과 관민을 지휘하여 적의 예봉을 꺾고 고려인의 기상을 만방에 떨쳤다. 고려사에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 세계최강의 몽고군을 맞아 지혜롭게 대치하여 누란의 위기에서 고려를 구하였다.

  1254년 10월 19일(음) 상주산성 백화산을 공격한 몽골적장 차라대지릴타이의 군사를 상주 황령사 홍지스님이 4번째 지휘관을 화살로 사살하고 과반의 병사들이 죽자 포위를 풀고 물러 났다. 파죽지세의 세계 최강 몽골군을 물리친 대첩을 이루고 역사 속에서 사라진 홍지(洪之) 스님은 이렇게 홀연히 사라졌다.

  누구도 그 생사를 모르고 자취조차 알 수 없지만 당시 강화도로 몽진한 고려왕과 무신정권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몽고는 고려로 하여금 강화성을 헐도록 했으며 상주산성도 3겹으로 이루어졌지만 인위적으로 해체한 흔적이 뚜렷하다. 수십 년을 이어온 항몽전투 장면, 그 와중에도 고려정부는 몽골군을 위로한다.

   1254년 9월 10일(음) 차리대의 진지에 선물을 보낸다. 고려는 술과 안주, 비단을 보내 몽골을 위로하거나 몽골과의 전투에서 끝까지 죽음을 각오하고 승전한 장수들을 처형하거나 몽골진영으로 압송하는 화전 양면의 편법을 사용하여 몽골의 환심을 샀다. 최춘명처럼 처형을 앞둔 고려무신을 보고 적장이 안타까워 우리에게는 역적이나 너희 고려에는 충신인데 충성을 다한 충신을 죽이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질책도 받았다고 한다.

   김득배(1312 ~ 1362)

  고려 공민왕시절 문신으로 1312년(충선왕 4년) 현 문경시 흥덕동 깃골에서 태어났다. 고려말 서북변 도병마사, 수총보저정원 공신, 정당문학, 평장정사(정 2품)를 역임한 문신 공신이다. 본관은 상산, 호는 난계(蘭溪), 그의 부친은 판전의 김록이다.

  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에 보직되었으며 그 후 전객부령(典客副令)으로 강릉대군(江陵大君)이 원(元) 나라에 입원(入元) 시 10년 간을 호종숙위하였다. 강릉대군이; 공민왕에 즉위하자 우부대언(右副代言)에 제수되었으며, 1357년(공민왕 6)에 서북면홍두왜적방어도 지휘사에 오르고 서북면도순문사 겸 서경윤상만호만호가 되었다.

  1359년 모거경이 홍건적 4만 명을 이끌고 의주를 함락시키자 안우(安祐), 이방실(李芳實) 등과 함께 서경을 탈환하고 적을 압록강 밖으로 격퇴시켰다. 1360년 3월에 그 공으로 수충보절정원공신(輸忠保節定遠功臣)에 책봉되고 정당문학(정 2품)에 제수되었다. 동년 3월에 지공 거(知貢擧)가 되어 포은 정몽주 등 33인을 급제시켰다.

   1361년 홍건적 20만 대군이 다시 압록강을 넘어 재침하자 서북면도병마사가 되어 안우, 이방실 장군과 이를 방어했으나 중과부적으로 개경(開京)까지 함락당했다. 이때 공민왕은 복주(안동)로 파천했다. 이듬해 고려는 20만 대군으로 홍건적을 격파하여 개경을 탈환하고 적을 완전히 압록강 밖으로 격퇴시켰다.

  이때 총지휘관의 전공(戰功)을 시기한 재상 기용이 왕의 밀지라고 거짓조서를 꾸며 안우, 이방실로 하여금 정세운을 살해하게 했다. 그 죄로 안우, 이방실이 죽임을 당하였고 김득배는 이를 만류한 사람인데도 동류로 누명을 씌워 억울한 죽임을 당하였다.

  그 후 공양왕 4년에 이르러 신원(伸寃)이 되었으며 1451년 중세 조선조 문종 원년에 문충(文忠)의 시호가 내려지고 국란극복 16 공신으로 숭의전(崇義殿)에 배향되었다. 문경시 흥덕동 389-1 깃대골에 생거지 비(碑)가 현존하고 있다.

  정기룡(1562 ~ 1622)

  조선 선조 때 경남 사천에 출생하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서 임진왜란 시 상주성 탈환하고 충무공 이순신과 더불어 육지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상주 문경을 비롯한 경북지역에서 큰 공을 세운 분으로 상주사벌에 호국영우의 기념관이 개관되어 있다.

  박정희(1917 ~ 1979)

  일제 강접기에 경북 선산에서 출생하여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문경보통소학교 교사를 역임하다가 만주국육군군관학교,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군생활을 하던 중 5.16 군사혁명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여 5, 6, 7, 8, 9대 대통령 재임을 하면서 새마을 운동, 포항종합제철공장, 울산화학공업단지, 조선고 경부고속도로 개통 등 18년 재임기간 동안 기간산업육성으로 선진조국 초석을 확립하고 국민교육헌장을 통하여 국민들의 교육의 질 향상과 문화유적발굴과 보존기반 등을 통한 한국의 역사, 문학, 과학의 계승발전에 헌신한 대통령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봉천사에서는 국사당을 축조하여 8분의 영전을 보시면서 애국교육의 장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금년에는 9월 13일부터 개미취꽃 축제를 시작으로 10월까지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여 아내와 함께 개미취 꽃도 감상하고 이 사찰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어제(9.13) 다녀왔는데 축석 연휴기간 중 이곳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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