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지혜/불교예술

겁외사 단청

산울림(능인원) 2022. 2. 22. 15:28

오늘날 우리나라 단청의 계승적 발전 전망은 밝은 미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전통문화의 발전적 계승이라는 대명제를 위해서 이 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단청불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명작의 풍요보다는 빈곤을 감출 수 없다, 그 원인은 훌륭한 작품을 완성하려는 작가의 의지나 창의성 부족, 참여 화공들의 멤버십 결여, 제작비용 절감 등 다양한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아름다운 단청의 사례는 흐린 하늘의 구름 사이로 비추는 햇살처럼 눈부시계 빛나고 있는 일례를 볼 수 있어 감개무량하다는 말이 아니고는 표현할 미사려구는 없을 것이다.

 

〔겁외사 대웅전 내부 천정〕

 

겁외사는 열반하신 성철스님의 생가를 가꾸어 만든 곳으로 대전에서 통영까지 개통된 고속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목화씨로  유명한 문익점 선생의 생가를  지나 경호강 다리를 건너 고속도로 교각 아래로 소담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겁외사(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가 보인다.

 

이 겁외사는 우리나라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성철 대종사가 출가하기 전 25년 동안 살았던 생가 터에 조성되어 2001년 10월에 창건 회향법회를 지낸후 새로 지은 절이다. 선사의 영정을 모신 생가 안채는 일반인들이 참배하는 공간이며 사랑채는 외부인이 머물 수 있는 숙소로 지어졌다. 유품전시관에는 스님이 주석하였던 백련암의 선방 내부 모습과 사용하였던 의자. 책상 등을 재현하였는데, 몇 점 안 되는 유품속에서 소탈한 일상과 생전 무소유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시간 밖에 있는 절' '시간을 초월한 절' 이라는 뜻의 겁외사에는 대웅전과 함께 선방, 요사, 누각 등이 들어서 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단연 대웅전의 단청이다. 

 

〔겁외사 대웅전 처마 부분〕   

 

이 절의 단청은 성천 김성규(대전 무형문화제 11호)의 작품이다. 조선 후기 영조대왕 시대에 활약했던 상겸 화상으로부터 시작되는 단청장의 법통이 근대에 이르러 마곡사의 금호, 보응, 금융 스님 등으로 계승되었고, 다시 그 계맥을 이은 박준주(전 문화재 전문위원·문화재 기술자협회장)  신언수(전북 무형문화재 제25호)문도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성천은 대웅전의 단청에서 금색을 이용한 새로운 기법을 적용하였다. 단청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보여준 이 작품에서 한국 단청의 미래가 무궁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단청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창의성 결여' 부분인데 이에 대해 항변이라도 하듯 이 작품에서는 창의적인 조형요소들이 숨어 있었다.

 

〔성철 스님의 출가 전 생가 터에 조성된 산청 겁외사〕

 

이 절의 단청 방식이 목조건축의 평방에서 기존의 도채방식과는 달리 석간주 바탕에 불전도를 묘사하는 수법은 특히 주목받을만하다. 이 방법은 한국단청색조의 불문율인 상록 하단의 경계를 보다 뚜렷하게 구분함으로써 지나친 장식에서 파생되는 번잡함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각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이밖에도 첨자 끝 마구리의 협소한 부분에 불상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세장 한필선의 운용과 치밀한 문채의 구사 등은 마치 불화 수준의 묘법을 보는 듯 작가의 정성 어린 창작의지를 다분히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깊고 고고한 문양 하나하나의 도안을 완료하고, 원색의 대담한 병렬, 강렬한 색채 대비로 표출한 이 단청의 기품은 극히 화려하면서도 조화로움이 빛나는 화엄 장엄의 극치를 보여 주는 걸작이다.

 

〔이것이 한국의 단청이다〕

 

일찍이 한국의 단청에서 이토록 강렬하고도 대담한 색채 대비를 채색한 불교예술의 장르는 없었다. 당나라 때 화려한 귀족의 문채를 자랑하는 당삼채도, 보색 대비의 마술사 프랑스 화가 마티스의 작품도, 한국단청 색조의 진면목과는 결줄 수 없을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하는 듯 한민족의 소박한 맥이 가슴에 품었던 정열적 예술혼으로 빚어낸 장엄과 기복의 미학 한국단청,  이제 우리 후손이 그 숭고함을 기릴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