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화상은 어느 날 조주(趙州)가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는 “평상심이 바로 도이다(平常心是道).”라고 대답했다.
마조스님의 법문에서 비롯된 이 말은 남전스님과 조주스님이 계승하여 조사선의 사상적인 법통이
되었는데, 뒷날 신찬스님이 그의 스승인 계현법사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말한 “공문불긍출(空門不肯出
:열린 문으로 나가지 않고) 투창야대치(投窓也大痴:봉창만 두드리는 어리석은 놈아) 백년찬고지
(百年鑽古紙:백년 옛 종이를 뚫어도) 하일출두기(何日出頭期:어찌 나갈 날이 있으랴)”라는 게송도
그 한 예이다.
『무문관』의 저자인 무문스님은 그때, ‘남전스님은 조주의 질문을 받고 곧장 기와조각이 깨어지고 얼음이
녹아버리는 것처럼(瓦解氷消), 모든 것이 자취가 없어져 어떠한 설명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봄에는 백화가 만발, 가을에는 밝은 달.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하얀 눈. 만약 한가하여 마음에 걸리는 일 없다면, 그에겐 하루하루가 기쁨의
날이네(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
무문스님의 게송에서 알 수 있듯이 남전화상의 ‘평상심 법문’은 반야바라밀에서 바라본 실상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감각과 현상 저 너머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도리를 신찬스님은 공문(空門) 즉, 열려있는 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생사의
윤회고에서 벗어나는 문이다. 온갖 고통과 좌절과 질투로 가득한 이 인생을 해탈의 세계로 인도하는 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바로 이 문을 열도록 하기 위하여『대품반야경』을 설하셨는데,
「조명품」에서는 이렇게 설시하고 있다.
“반야바라밀은 능히 모든 것을 비추니, 필경청정(畢竟淸淨)이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니, 스스로의 모양이 텅 비었기(自相空)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은 생사(生死)를 멀리 여의니, 항상 함도 아니고 단멸함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은 도와주는 이가 없는 사람의 보호자가 되니, 온갖 진귀한 보배를 베풀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평상의 마음이 도’라는 남전스님의 법문을 생각하게 된다.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막론하고 우리들은 ‘도와주는 이가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이 보호자가 없는 중생들을 본래청정(本淨)이고 본래공(本空)인 반야바라밀이 열반으로 인도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평상적으로 사용하는 온갖 마음의 씀씀이는 실은 반야바라밀의 현현(顯現)이고,
일체가 반야바라밀의 현현이기 때문에 평상의 마음이 도(道)인 것이다.
이 도리를 증득하는 묘법이 마하반야바라밀의 염송이다.
이 일심염송 속에서 평상심이 도임이 눈앞에 전개되고, 이 땅이 곧 Paradaise(극락, 천국)임을 확연히 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진귀한 보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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