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수연 스님이 해인사에 나타났다. 그렇잖아도 법정 스님은 하안거를 난 뒤 수연 스님을 찾아보려 했는데 수연스님이 먼저 찾아 온 것이다. ‘수연스님, 오대산 상원사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산철에 한 번 찾아 가려고 했지요.” “법정스님, 저도 스님이 해인사 선방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길이지요. 법정스님이 만행 길을 떠났으면 어쩌나 하고 달려왔어요.” 수연스님과 법정스님은 서로 손을 꼭 잡고 반가워했다. 그러나 수연스님은 예전보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수연스님, 몸이 안 좋습니까?” “소화가 잘 안 돼서 그래요, 오래됐어요.” “그럼 약을 먹어야지요.” "기도하고 있으니 괜찮아질 겁니다.” 수연스님은 퇴설당으로 입방했다. 산철이지만 만행을 떠나지 않고 정진하는 선객들이 여러 명 있었던 것이다. 수연스님이 퇴설당에 든 이후 변화가 하나 생겼다. 섬돌 위에 놓인 여남은 컬레의 고무신들이 한결같이 하얗고 가지런히 놓여 있곤 했다. 수연스님의 밀행은 그치지 않았다. 수연스님은 구참(나이 많은) 스님들이 빨려고 장삼을 벗어놓으면 남몰래 빨아 풀 먹여 깔깔하게 다려놓곤 했다. “수연스님은 바로 자비보살이십니다.” “뭘요, 저는 몸이 약해서 할 수 있는 일만 하는걸요.” 수연스님은 공양(식사)을 몇 숟가락만 했다.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무래도 위장이 크게 탈이 나 음식을 소화 시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수연스님, 대구 좀 갔다 옵시다. 법정스님은 종무소에 용건을 알리고 수연스님을 억지로 데리고 대구로 버스를 타고 나갔다. 완행버스는 손님을 만날 때마다 쉬었다. 자갈길에서는 곧 망가질 것처럼 뛰었다. 포장도로에 접어들어 완행버스가 온순해 지자 수연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뒤, 호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더니 창틀에서 빠지려는 나사못 두 개를 죄어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수연스님의 행동을 지켜본 법정스님은 콧잔등이 찡해 눈을 돌렸다. 가슴속에 파도 같은 것이 일었다. “아, 수연스님은 내 것이네, 남의 것이네 하는 분별이 떨어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나도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이 없지 않은가. 아, 수연스님이야말로 세상의 주인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닌가,” 법정스님은 수연스님을 설득하여 해인사 진주포교당으로 데리고 갔다. 산중보다 도시가 치료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법정스님은 수연스님을 간병한 지 사흘 만에 해인사로 돌아왔다. - 법정스님 이야기 "무소유" 정찬주 장편소설에서 - 수연스님은 법정스님보다 출가는 1년 선배이고 세속의 나이는 한 살 아래지만 참 우정의 도반들이었다고 합니다. 2011.9.15.木.맑음.龍田/산골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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