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거사
-
--- 대행 큰스님
-
-
스님으로 출가하여 정진을 계속하던 부설 거사가 어느 날 두 도반 스님과 함께
-
오대산에 들어가 더 크게 공부를 성취하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 그 일행이 어느 민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 집에는 19세가 된 과년한 딸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말을 하지 않아 주변에서 모두들 벙어리로만 알고 있었던 그녀가
부설 거사를 보는 순간 신기하게도 입을 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스님을 뵈는 순간부터 말을 하게 되었으니 지아비로 모시겠다고
청을 함과 동시에 만일 허락하지 않는다면 죽어 버리고 말겠다며 결사적으로
청혼을 해왔다. 부설 거사는 난감해졌다.
대도를 성취하기 위해 얼른 길을 떠나자고 재촉하는 두 도반 스님과
죽기로써 같이 살겠다는 그 집 딸 사이에서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결국 부설 거사는 '내 앞에 닥친 일도 치우지 못하면서 먼데 일을 치우려고
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결혼을 한 부설 거사는 아내와 함께 살면서도
조금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오대산으로 떠난 옛 도반 스님들이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집에 들러 측은한 듯 부설 거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태연하게 미소만 짓던 부설 거사가 그날 저녁 물을 가득 담은 병을
천장에 매달아 놓고 두 도반 스님에게 그 병을 깨뜨려 보라고 문제를 냈다.
두 도반 스님이 차례로 병을 치자 병이 깨지면서 물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부설 거사가 병을 쳤다. 그러나 병은 깨져 떨어졌지만
병 속의 물은 응고된 채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이를 바라보는 두 도반 스님에게 부설 거사가 한마디 일렀다.
"우리의 몸뚱이는 저 깨진 병의 껍데기와 같고,
응고되어 매달린 채 움직이지 않는 물은 우리의 성품과 같습니다.
이 성품은 변함이 없어 흔들림이 없고 항시 여여한 것입니다."
두 도반 스님은 마침내 부설 거사 앞에 머리를 숙이고 제자가 되었다.
-
-
대행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어느 누구든 무엇이든 깔보아서는 안된다.
사람은 물론, 짐승, 미물, 나무나 돌에 이르기까지
웃으면서 대해줄 수 있는 그런 아량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다 못 배웠을 때의 나의 모습이요,
내가 수억겁 광년을 거쳐오면서 지녔던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다 나 아닌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졌을 때 바로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놓고 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참지혜 > 참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혼자 있음의 즐거움(법상스님) (0) | 2011.06.08 |
---|---|
팔열지옥 팔한지옥 (0) | 2011.06.03 |
달라이 라마가 세상 모든 분들께 (0) | 2011.05.26 |
천상천하 유아독존 (0) | 2011.05.23 |
공부하는 사람은 (경허선사) (0) | 2011.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