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으나 누우나 생각이 생각을 끊임없이 해서, 도 닦는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물이 흘러가듯 해야 한다. 앉으나 누우나 항상 자기의 그 알려고 하는 화두를 눈앞에 대하기를 사람을 서로 대한 것과 같이 해서 잠시라도 중단하면 안 된다. 금강과 같은 그런 큰 용기와 뜻을 세워서 죽나 사나 하는 그런 심정으로 공부를 하되, 한 생각이 만년과 같이 해서 내 마음의 광명을 돌이켜 비춘다. 살피고 다시 관(觀)하여 마음 가운데 망상과 하찮은 생각이 있나 없나 살펴서 망상이 붙으려 해도 붙을 수가 없어야 한다. 파리가 오만군데 다 붙지만 불이 활활 붙는 데는 못 붙듯 망상의 파리도 듣는데 붙고 보는데 붙고 일상생활 붙지 않는 데가 없이 붙어서 사람의 애를 먹이지만, 지혜(智慧)의 불이 활활 붙는 데는 붙으려 해도 붙을 수가 없다.
공부를 하려고 앉아 있으면 혼침에 잠이 오거나 이 생각 저 생각 산란심이 오게 마련인데, 이것을 오래 닦아 조복 받으면 자연히 쉬어진다. 쉬고 쉬어서 홀연히 어떤 경지를 보거나 어떤 소리를 들으면, 활연히 의정(疑情) 덩어리가 타파될 때, 자기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예전 당나라에 배휴(裴休)라는 사람이 있었다. 쌍둥이로 등이 맞붙은 기형아로 태어나서 부모가 칼로 등을 갈라 약을 바르고 치료를 해서 키웠는데, 살이 많이 붙은 아이는 형이 되고 적게 붙은 아이는 동생이 되었다. 형의 이름은 도(度)라 부르고 동생도 도(度 )라 썼는데 글자는 같지만 음이 틀린다. 형 도는 법도를 말하고 동생은 헤아릴 때 말하는 탁(度)이라고 불렀다. 휴(休)는 어릴 때 형인 배도의 장성한 후 지은 이름이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외삼촌한테 몸을 의탁하고 있었고, 동생 탁은 어디로 인지 혼자 가고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일행선사(一行禪師)라는 도덕(道德)이 높은 스님이 오셔서 외삼촌과 말씀을 하시는데, 배휴가 문밖에서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지나치다가 잠깐 들었다. 그 스님의 말씀인즉
“저 아이는 웬 아이입니까?”
“나의 생질인데 부모가 없어 데리고 있습니다.”
“저 아이를 내보내시오.”
“부모가 없는 아이를 어떻게 보냅니까?”
“내가 보니 저 아이를 놓아두면 워낙 복이 없는 아이라서 얻어먹을 아이인데 저 아이로 말미암아 삼 이웃이 가난해집니다. 저 아이가 얻어먹으려면 우선 이 집부터 망해야 하니 당초에 그렇게 되기 전에 내보시오.”
선사가 돌아간 뒤 배휴가
“외삼촌 저는 어디로든지 가야 하겠습니다.”
“가기는 어디로 가느냐?”
“아까 일행선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빌어 먹으려면 일찍 빌어 먹을 일이지 외삼촌까지 망해 놓고 갈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빌어 먹으러 가렵니다.” 하고는 만류하는 외삼촌을 뿌리치고 얻어먹는 거지가 되어서 사방으로 다니던 중, 하루는 어느 절 목욕탕에서 부인삼대(婦人三帶)라는 아주 진귀한 보배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혼자 생각하기를 이 좋은 보배를 누가 잃어버렸나, 하고 구걸해 먹는 처지에 주어다 팔아먹든지 할 텐데, 임자를 찾아주려고 보배 임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보배는 어떤 물건인가 하면 그 고을 자사(刺使, 지금의 도지사)한테 죽을죄를 지은 사람이 삼대독자인데, 그 어머니가 아들의 명(命)을 구하려고 가산(家産)을 모두 팔아서 멀리 촉(蜀) 나라에 까지 가서 이 부인삼대를 구해다가 자사에게 애절을 하여 그 삼대독자를 살리려는, 참으로 애절한 사연이 있는 물건이었다. 그 어머님이 절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행장을 수습하여 간다는 것이 워낙 바쁘게 서두르다 보니 귀중한 보물을 빼놓고 간 것이다. 집에 가서 찾아보니 부인삼대가 없어서, 허둥지둥 절 목욕탕에 와 보니 웬 거지가 목욕탕 앞에 서 있기에 저 거지가 안 가져갔을까 해서 물어보니 “내가 챙겨 놓았는데 당신이 주인이면 가져가시오. 내가 그 보배를 지켜 준다고 여기 있었오.” 빌어먹는 처지에 어떻게 보물을 지켜주고 할 여유가 없을 텐데 그것을 지켜주어 그 사람이 감격하여 치하를 하고 보배를 가지고 가서 삼대독자를 살렸다. 그 후 배휴가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 외삼촌 집에 들르니 마침 일행선사가 오셨는데 배휴를 보더니 “애야 네가 정승이 되겠구나.” 배휴가 그 말을 듣고 “스님은 언제는 내가 빌어 먹겠다고 하더니, 오늘은 정승이 되겠다고 하니 거짓말 마시오. 언제는 빌어 먹겠다고 하더니. 또 정승은 무슨 말씀이요.” “전날에는 얼굴 상을 봤고, 오늘은 너의 마음 상을 보았다. 네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라고 묻자 배휴가 사람 하나 살린 일을 이야기하니 “그랬구나!”하고 수긍을 하였다.
그 후 참으로 일행선사의 말씀처럼 삼공(三公) 영의정이 되었다. 그 후 어느 절에 갔더니 그 절에 노사(祖師)님들을 모셔놓은 영각(影閣)에 가서 조사의 영상(影像)을 보고 스님들에게 묻기를 “선사(先師)의 영상은 저기 걸려 있는데, 선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하고 물으니 마침 황벽선사(黃檗禪師)가 그 절 부근 토굴애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대중들이 말하기를 아마 그분이 참선하는 분 같다고 하며 황벽스님을 모셔왔다. 배휴가 황벽스님에게 묻기를 “선사의 영상은 저기 있는데, 선사들은 모두 이디로 갔습니까?” 황벽스님이 버럭 같은 소리로 “배후야!” “예”하고 대답하자 “어디에 있느냐?”하고 큰소리로 하는 말에 배휴가 활연히 도(道 )를 알았다.
그 후에 황벽스님을 도와서 불교를 많이 외호하고 불경(佛經)에 서문(序文)도 지었다. 배휴의 지위가 한나라의 정승이 되었으니 함께 등이 붙어 태어난 그 동생을 생각하고 사방에 수소문을 해서 찾아도 동생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는지 내가 이렇게 정승 노릇을 하고 있으니 좀 도와주고 함께 잘 지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황하강을 배를 타고 건너는데 때마침 더운 여름이라, 배휴가 뱃사공을 보니 웃옷을 벗어부치고 노를 젓는데 등을 살펴보니 자신의 등과 같아서 동생이 아닌가 하고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배탁이 올 시다.” “그럼 네가 내 동생이 아닌가?” “아 그렇습니다.” “넌 내가 정승이 된 줄 모르나?” “알기는 벌써 알았습니다.” “그럼 왜 찾아오지 않았나.” “아. 형님은 형님 복에 정승이 되어 잘 먹고 잘 지내지마는, 나는 형님덕으로 잘 지낼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배를 하나 장만하여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건너주고 있습니다.” 하고는 형이 가자고 해도 따라가지 않았는데, 형님은 형님 복에 잘 살지만 이렇게 넓은 산과 물을 벗 삼아 오가는 사람을 건너주며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형님의 삼공지위(三公地位) 보다 낫다고 여긴 것이다.
배휴는 전생에 많은 수행을 쌓고 이 세상에 나온 사람이고, 동생 배탁이도 말하는 것을 보면 세상 영욕을 초월해서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아는 참으로 고매하고 세상 사는 맛을 아는 사람이다.
정말 한 고비 넘긴 사람이다. 화엄경(華嚴經) 십지품(十地品)은 십지보살(十地菩薩)이 처음 큰 원력을 발해서 마음을 청정케 하는 법문이다. 십지보살이 대원을 발해서 이 마음을 얻는데, 첫째는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니, 석가여래(釋迦如來)도 중생을 위해서 나셨다. 둘째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마음이니, 부드럽고 착하고 화해야 한다. 마음이 화하면 기운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면 집안이 화하니, 화한 가운데 무엇이든지 이롭게 이룩된다. 셋째는 남을 수순하여 주는 마음이니, 남의 뜻을 따라줄 것도 있고 안 들어줄 것도 있는데 대강 들어줄만한 것은 들어주는 것이 좋다. 넷째는 적정심(寂靜心)이니, 내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일을 하고 바쁘게 설치고 해도, 마음은 고요하고 태연부동해서 고요하고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다섯째는 조복심(調伏心 )이니, 나쁜 마음이 생기든지 남을 속인다든지 하는 마음을 항복받고 꺾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는 적멸심(寂滅心) 이이니, 이것도 고요한 것이다. 일곱째는 겸화심(謙和心)이니, 겸손하고 하심(下心)하는 것이다. 벼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도가 높을수록 겸손하고, 사람도 훌륭할수록 하심(下心)이 되어야 한다. 여덟째는 윤택심(潤澤心)이니 마음이 초초하고 속에서 불이 일게 하지 말고 윤택스럽게 해서 남까지 윤택하게 하여야 한다. 아홉째는 부동심(不動心)이니 하늘에 별이 많지만 하늘 중심에 정반성(定盤星)이라는 별은 동하지 않는다. 내가 부동심(不動心)에 이르러야 남의 초조한 마음을 없애준다. 열째는 불탁심(不濁心)이니 물도 탁하면 밑이 안 보인다. 물이 탁하지 않아야 물밑이 환하게 들여다 보인다. 처음 십지에 들어가는 보살들이 이러한 열 가지 큰 원력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두운 가운데 바늘을 꿰고, 귀 안에서 기운이 나온다. 스님께서 손을 들어 그 기운이 바로 허공으로 올라가는 듯이 표시하시며 “이러한 기운이 나와, 이러한 기운이 나와.” 말씀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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