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길을 가다가 보니 오백년은 넘은 듯한 정자 나무아래에서 노인들이 흥미 진진한
어조로 논쟁을 하고 있었다. 이 정자 나무는 둥치가 이렇게 크니 잎이 무성하다고, 반대
의견인 노인들은 잎이 무성하니 자연스럽게 나무가 굵어 졌다고 하면서 갑론을박으로
팽팽이 맞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격양된 목소리만 오고 갈 뿐이었다.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져인가? 정말 판단할 수 없는 말들이다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노인들의 목숨을 건 말다툼 같기고 하고 어찌보면 세월의
뒤안길에서 그동한 쌓은 경륜의 논쟁 같기고 하였다. 양쪽 노인들의 말씀이 모두다 일리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큰나무든 작은나무든 뿌리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나무는 뿌리가 없으면 죽는다. 큰뿌리 작은뿌리 가지친 뿌리 모두다 중요하지만 생명을
유지 시켜주는 뿌리는 실뿌리라는 것을, 길을 걷던 나는 깊게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전쟁터에서도 군인들은 초급 지휘자부터 고급 지휘관까지 머리로 싸움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실뿌리 노릇을 하는 병사들의 사기와 병기에 의해서 전쟁의 승패가
가름 된다는 것을 잊어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기업도 마찬가지 아닌가? 말단 공장 현장에서 직분에 맞는 기술을 가진 노동자가 있기에
위대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지 사장이나 임원들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잘 만들겠다는 생각과 질 좋은 부품이 있어야 최상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2년전에 나의 뿌리를 찾아 수백년이 흐른후, 후손들이 한푼 두푼 모아서 선대유택들의
사초를 했는데 잔듸가 잘 자라고 있는지, 어떻게 영양분을 공급할까 생각하다가 종친 청년
회원들이 석회와 비료를 주겠다고 하여 다시 선대 유택을 찾게 되었다.
물론 선대조상들께서는 후손들에게 그만한 대우를 받을 만한 업적이 있으신 분이니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겠으나, 잔뿌리 같은 후손이 없이는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잔뿌리 역활을 하여주는 후손이 많으면 과거 별슬과는 관계 없이 좋은 대우를 받는
조상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욱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있는 사람 가진 사람들은 조상묘소
가꾸기에 없는 벼슬까지 만들어 모시지 않는가?
그러나 나는 떴떠시 조상을 대할 수 있는 복이 있으니 참으로 다행 스럽다. 우리선조
나에게 18대조께서 오늘의 청양 정산에서 현감을 마치시고 상경시 천안 성거산을
보시고 사람이 살기가 매우 좋은 곳으로 생각하시어 그곳에 정착한지 언 600년 참으로
씨족사회를 6백년을 이어 왔다는 사실에 그져 흡족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17대조께서는 어모장군 및 광량진 수군첨절제사(오늘날의 해병대사령관)를 하시고
16대조께서는 계공랑(면장직위)을 하시고 일찍이 돌아 가셨으나, 16대 할머니께서는
조선역사에 처음으로 흐르는 내천에 보를 설치하고 그물을 이용 농사를 짓도록 창안,
천안지역에 널리 알리고 지도하시어 당시 천안시지에 그기록이 남아 있다. 어쩌면
민생을 구제하신 이 할머님야 말로 본받아야 할 조상의 얼이 아닌가 싶다.
15대조께서는 통훈대부, 신창현감, 홍주진관 병마절제사를 하시었다. 그 아드님인
14대조께서는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겸 경연참찬관(임금님 스승), 어모장군을 하시다가
여진족이 침범하여 삼척진수군절제사로 임명되어 여진족을 몰아내고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를 하시어 말이 투구를 물고 한양집으로 찾아와 13대조부께서 말을 앞세워 시신을
수습 장례를 치룬후 말이 천수를 다하자 14대조부유택 아래에 말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오늘 5분의 선대조상들의 유택에 잔듸가 잘 살도록 거름을 주고 주변 잡풀을 제거하고
나니 그래도 나의 굵은 뿌리를 찾아 잔뿌리 역활을 하였다는 생각에서 마음속으로는
후손으로서 도리를 지켰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그것도 잠시였다. 정말 잔뿌리 역활을
다한 것은 내가 아니라 청년회와 우리 종친의 젊은 며느리들 이었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는
것에 후회가 되었다. 종친 젊은 며느리들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리고 감사한
마음 뿐이다.
며느리들이 삼계탕을 현장에서 따듯하게 끓여 한마리씩 참여한 모든 종친들에게 점심식사로
제공하고 생먹걸리를 한잔씩 하도록 편육과 김치도 새로 담아 내놓았는데 그 맛 또한
옛날 우리 어머니께서 해주신 맛을 보존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 언양김씨 며느리로서
손색 없는 맛을 전수 받기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나 라는 생각을 하니 젊었던 시절
아내에게 음식맛 투정을 했던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한 집안의 며느리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가? 친정에서 배웠던 모든 것을 버리고 시집의 맛을
새로 배워야 하는 며느리들 많은 스트레스와 고내 그리고 인고의 세월들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볼 수 없는 우리 종친 젊은 며느리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오늘 나의 뿌리를 찾아 선대 유택을 찾았지만 정작 생명의 뿌리 역활은 종친 청년회와
그들의 부인인 젊은 며느리들 이었다는 것을 다시 배우게 된 계기가 되였다. 아마도 그래서
여든 먹은 할아버지가 세살 손자에게 배운다는 말이 생겨났나보다.
아마도 한고장에서 6백년을 지키며 살아 올 수 있었던 것도 며느리들의 집념어린 가문
지키기와 후손 교육의 힘에서 비롯 되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천안 천흥리 종친 젊은 며느리들은 16대조 할머님께서 그랬드시 참으로 고운 마음씨와
그 정성이 담긴 손길에 감사하고 또 그들의 가정에 늘 편안과 행복이 가득 하기를 오늘은 꼭
기원하고 싶다.
단비
충마무덤
14대조부 비문(알아보기 쉽게 한글로 제작)
며느리 들이 준비한 삼계탕 및 막걸리
조상님들께서 선물하신 야생 붓꽃
14대조 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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