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의 나들이/나들이 지혜

부안 개암사

산울림(능인원) 2015. 7. 12. 09:43

전북 부안에 가면 능암산 개암사가 있다. 능암산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오른 울금바위가 인상적

이지만 아무래도 천년고찰의 은은하고도 정감있는 운치 앞에 그 어떤 아름다운 형용사가 필요

없는 도량이다. 이곳을 찾게되면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중세 조선조에서 한 획을 그었던 기생

매창의 시선이 흐르는 것 같아 그 정취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기생 매창의 본명은 향금. 자는 천향, 매창은 호다. 계유년에 태어나 계생이라 불렸다 한다.

기생 매창의 사후에 그의 시집을 목판으로 발간한 곳이 바로 이곳 개암사 이기 때문에 더욱 감회가

새롭다.  

 

매창은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교유가

깊었던 부안(扶安)의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루었다.

부안에 있는 묘에 세운 비석은 1655년(효종 6) 부풍시사(扶風詩社)가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1513년

(중종 8)에 나서 1550년(명종 5)에 죽은 것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그의 문집 『매창집』 발문에

기록된 생몰 연대가 정확하다. 그는 37세에 요절하였다.

 

유희경의 시에 계생에게 주는 시가 10여 편 있다. 『가곡원류』에 실린 “이화우(梨花雨) 흣날닐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한 님”으로 시작되는 계생의 시조는 유희경을 생각하며 지은 것이라는 주가

덧붙어 있다.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도 계생과 시를 주고받은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계생의

죽음을 전해듣고 애도하는 시와 함께 계생의 사람됨에 대하여 간단한 기록이 덧붙여 있다. 계생의

시문의 특징은 가늘고 약한 선으로 자신의 숙명을 그대로 읊고 자유자재로 시어를 구사하는 데에

있다. 그의 우수한 시재(詩才)를 엿볼 수 있다.

 

여성적 정서를 읊은 중에 「추사(秋思)」·「춘원(春怨)」·「견회(遣懷)」·「증취객(贈醉客)」·

「부안회고(扶安懷古)」·「자한(自恨)」 등이 유명하다. 그는 가무·현금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예술인이었다. 부안의 묘에 비석이 전한다. 1974년 그 고장 서림공원에 시비(詩碑)를 세웠다.

 

매창의 "백운사"란 시를 보면 참으로 서정적 정서가 깊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步上白雲寺(보상백운사) : 걸어서 백운사에 오르니
寺在白雲間(사재백운간) : 절이 흰 구름 사이에 있네.
白雲僧莫掃(백운승막소) : 스님이여 흰 구름을 쓸지 마소
心與白雲閑(심여백운한) : 마음은 흰 구름과 함께 한가롭소.

 

개암사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진표율사, 원감국사 등의 고성대덕이 인연을 맺었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찰로 크게 번성하였던 사찰이나 고려 말 조선 초를 거치면서 서해안에 

왜구들의 침략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었던 개암사는 조선 태종 14년에 다수 중수 되었다 한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개암사는 다시 폐허가 되었으며 인조 15년 계호대사 대법당을 중건한 후

약 370년에 걸쳐 절 안의 많은 건물과 주변암자를 이어서 대 가람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현존하는 건물을 대웅보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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