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은 높이 846.5m. 차령산맥 서남부에 솟아 있으며, 금강에 의한 침식으로 이루어진 산지이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연천봉·삼불봉·관음봉·형제봉·도덕봉 등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남북방향으로 이어지다가 동쪽으로 2줄기, 서쪽으로 1줄기를 뻗치고 있어, 전체의 모습이 마치 닭볏을 쓴 용과 같다고 하여 '계룡산'이라 했다.
산세가 험하며, 노성천·구곡천·갑천 등이 발원하여 금강으로 흘러든다. 연평균기온은 11℃ 내외이며, 연강우량은 1,280㎜ 정도로 6~9월에 강우량의 90%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식물 804종, 포유류 27종, 조류 110종, 곤충 2,113종, 양서·파충류 21종, 어류 21종 등 3,619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예로부터 신라 5악 가운데 서악(西嶽)으로 제사를 지내왔고, 조선시대에는 중악단(中嶽壇)을 세워 산신제를 지낼 만큼 신령스러운 산이었으며,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이다. 〈정감록〉에서는 이 산 일대를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예언했고 조선초에는 계룡산 신도안에 왕도를 건설하려 할 정도로 명당이라 알려졌다. 19세기말부터 나라가 혼란해지자 신도안을 중심으로 전래의 무속신앙과 각종 신흥종교가 번성하고 이들의 수도장으로 이용되어, 계곡 곳곳에 교당과 암자·수도원·기도원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은 종교정화운동으로 시설물들이 철거되고 주변을 정리해,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1968년 12월 지리산에 이어 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의 총면적은 65.34㎢이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산봉·계곡·폭포·암굴 등의 특출한 자연경관을 비롯해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의 고찰과 유물유적이 많아 교육의 장으로도 적합하다.
비구니들의 불교 전문 강원(講院)인 동학사는 산의 동쪽 기슭에 있다.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되었으며, 동쪽에 학바위가 있어 동학사라 했다. 고려말·조선초 삼은의 위패를 모신 삼은각과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냈던 숙모전 등이 있다. 서쪽 기슭에 자리한 갑사는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백제시대에 고구려 아도화상이 창건했고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년 인호대사가 다시 중건했다.
갑사 삼신불괘불탱(국보 298)·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국보 299) 등 국보 2점과 철당간 및 지주(보물 제256호)·부도(보물 제257호), 구리가 8,000근이나 들었다는 동종(보물 제478호)을 비롯한 보물 6점 외에도 지정문화재 9점, 비지정문화재 10점 등이 보존되어 있다. 갑사에서 용문폭포를 따라 1.3㎞ 정도 오르면 천연석탑인 천진보탑과 신흥암이 있다.
서남쪽에 있는 신원사는 652년(의자왕 12)에 보덕화상이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에 다시 지은 것이다. 경내에는 산신제단인 중악단, 5층석탑 등이 있으며, 주위에 고왕암·등운암 등 암자가 있다. 이밖에도 용화사 등 많은 절이 있다.
또한 계룡 8경으로 알려진 뛰어난 경치 8곳이 있는데, 제1경은 주봉인 천황봉의 일출이며, 제2경은 세 부처님의 모양을 닮았다는 삼불봉의 설화(雪花)로 겨울 설경이 신비롭다. 제3경은 천황봉의 일출과 쌍벽을 이루는 연천봉의 낙조이며, 주위에 갑사·신원사 계곡 등이 있다.
제4경은 관음봉에서 바라다보는 흰구름이며, 이곳에서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철쭉길 또한 유명하다. 제5경은 춘 동학 추갑사로 표현되는 울창한 숲의 동학사계곡이며, 제6경은 갑사계곡의 단풍으로, 특히 용문폭포를 포함한 갑사구곡이 유명하다. 제7경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은선폭포이며, 제8경은 청량사터의 전설에 얽힌 청량사지쌍탑(지방문화재 제1호)이다. 이 7층탑을 오라비탑, 5층탑을 누이탑이라 하여 오누이탑 또는 남매탑이라고도 한다.
풍수지리학 상으로는 계룡산은 금강산(東嶽) · 구월산(西嶽) · 지리산(南嶽) · 묘향산(北嶽)과 더불어 중악(中嶽)으로 불릴 만큼 명산으로 꼽히고 있다. 예로부터 십승지지(十勝之地)는 병화가 들어오지 못하고 삼재(三災)의 난이 머무르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계룡산은 어느 명승지보다도 지기 · 지령이 뛰어난 곳으로 유명하였다.
옛 삼한시대에는 계룡산을 천태산(天台山)이라 불렀으며, 고려시대에는 옹산(翁山)이라 부르던 것을 태조가 조선을 개국할 무렵 무학대사 등이 와서 보고는 “이 산은 한편으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고, 또 한편으로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니 두 가지 모양을 모두 따서 계룡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한 뒤 지금의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계룡산 중에서도 대궐터가 있는 신도안 일대는 특히 풍수설의 중심이 되는 지역이다. 신도안은 행정구역상으로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석계리, 정장리, 부남리, 용동리, 남선리와 대전 유성구 송정동 일부에 걸쳐 있는 해발 5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남쪽만이 트인 동서 약 4㎞, 남북 약 3㎞인 분지이다.
이곳은 신도역에서 들어오는 양정고개의 남면을 제외하고는 동 · 서 · 북 삼면이 모두 산협으로 둘러싸여 있다. 《계룡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지세는 백두산을 종으로 하여 그 지형의 꿈틀거림이 큰 용과 같은데, 계룡산이야말로 백두산으로부터 흘러내린 모든 산들의 원맥이 멈추어진 곳이라고 한다.
풍수가들의 말에 따르면 선인봉(仙人峰)은 청룡(靑龍)이 되고 국사봉(國師峰)은 백호(白虎)이며 삼불봉(三佛峰)은 현무(玄武)가 되고 대둔산(大芚山)은 주작(朱雀)이라고 한다. 신도안을 중심으로 하여 동과 서의 양편으로 용추(龍湫)가 있는데, 동쪽에 있는 것은 동용추, 서쪽의 것은 서용추라 한다.
전설에 따르면 동추에는 자룡(雌龍)이 살고 서추에는 웅룡(雄龍)이 살았다고 하여 각각 암용추 · 수용추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신도안을 좌청룡과 우백호가 옹위하고, 숫용추 계곡과 용화사 암용추 쪽으로 흐르는 내와 밀목재 남쪽 계곡에서 흐르는 세 줄기 계곡물이 부남리 궁궐평을 양쪽으로 감싸고돌아 정장리 별뜸(현 삼군본부 자리로 들어가는 사거리 옆)에서 합쳐져 신도천을 이루고 다시 남쪽으로 흘러 두마와 대전 경계지점인 기성 원정리 영회마을 앞에서 벌곡천과 합하여 구부러져서 동류하여 갑천이 된다. 이것은 다시 신탄진에서 금강 본류와 합류한다.
이 때문에 옛부터 풍수가 들은 신도안을 중심축으로 산천이 감싸고 흘러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 같은 산태극, 수태극의 형국을 이루었다 하여 풍수지리적으로 뛰어난 길지로 여겨왔다.
신원사 경내를 거닐다가 불교의 기본이 무엇인가를 깊이 들여다 보니,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땅이다. 사람이 땅으로 인하여 꺼꾸러지는 자는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하니 땅에서 넘어지는 것을 잊어버리고 일어남을 구함은 옳은 곳이 있음이 없는 것이다. 마음이 미혹(迷)하여 끝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자는 중생이요, 한마음을 깨달아 무한한 묘용을 일으키는 자는 모두 부처님이니 미하고 깨달음이 비록 다르나, 따지고 보면 한마음에서 달라지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불(佛)을 구하는 자도 또한 옳은 곳이 있음이 없다는 것이 불교의 기초적인 논리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먼저 깨닫고 다음에 중생을 위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중생가운데 깨달음이 있고 중생가운데 선이 있다고 볼 때 그러한 말은 합리적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중생 중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부처님은 이러한 자연과학의 세계가 어떻게 발전하고 사람의 대뇌와 분석적 의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바로 지금 여기 고뇌하고 있는 중생이 문제이었던 것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듯이 미혹(迷)한 자는 미를 거둘 줄 알아야 된다. 이 모든것이 땅에서 자라고 땅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연천봉에서 바라본 천왕봉과 관음봉




관음봉에서 바라본 연천봉



관음봉에서 바라본 삼불봉

신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