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 마당/내 이야기

연기와 중도

산울림(능인원) 2024. 9. 13. 10:00

  불교의 원리를 단적으로 살펴보면 불교는 연기론(緣起論)이고 중도론(中道論)이다. 연기와 중도는 불교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기는 불교의 원리를 설명한 부분이고 중도는 불교의 실천을 설명한 부분이다. 이 연기의 원리에 의한 중도적 실천이야 말로 불교에 있어 그 이상도 없고 전부일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는 바로 연기의 진리이다. 또 부처님께서 평생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도 중도의 실천이다. 팔만대장경 어는 곳을 막론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된 내용이다. 경에 따라 논리적 전개의 형태와 여러 가지 조직적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내용에 있어서는 연기와 중도이다.

  예를 든다면 “중아함경” 제7권에 보면 ‘연기를 보면 진리를 본 것이요. 진리를 보면 바로 연기를 본 것이다. 그러니 진리는 연기법이다’고 하셨고 또 “잡아함경” 제12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리고 연기법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든지 안 하든지 항상 존재한다. 여래는 이법을 깨달아 해탈을 성취해서 분별 연설하여 깨우치나니라.’ 이렇게 선언하셨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것이 연기법이라고 한다면 그 연기법의 내용은 과연 어떤 것인가. 연기법이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연기를 설명한 중요한 골자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홀로 일어났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무엇으로 말리암아 일어나서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서로 의존하여 발생해서 공존하다가 사라질 때는 다른 것에 의존해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연기라고 하는 것은 이것과 저것이 서로 어울려서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는 것이 연기의 골격인 것이다. 후세에 와서 인연이란 말로도 쓰이고 인과(因果)란 말로도 혼용되고 있다. 이래서 불교는 연기, 인연, 인과 이것이 진리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인연이란 이것과 저것이 서로 말미암아 서로 어울려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인과는 시간적 입장에서 관찰하는 것으로서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는 바로 원인에서 온다는 뜻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고 또 결과를 떠나서 원인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연기는 물질이라 하더라도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고 정신이라 하더라도 인연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인연을 떠나서는 어떤 존재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라만상은 모두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뜻으로 인연생기(因緣生起)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이 된다. 현재가 있는 것은 과거의 인연에 의해서 일어났고 과거는 또 그 과거에 의해서 일어났고 또 그 과거는 그 과거에 의해 일어나서 과거를 따져봐도 끝이 없고 그뿐 아니라 현재는 미래의 결과를 만들어 냈고 그 미래는 또 미래의 결과를 만들고 해서 미래에는 끝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과거를 더듬어봐도 끝이 없고 미래를 내다봐도 끝이 없게 된다. 이것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과거 전세인연에 의해서 그와 같은 몸으로 태어났다. 현재 금세 인연으로 미래 내세에 또 태어나고 하여 계속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여 끝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삼생연기(三生緣起)라고 하는 것이다. 있는 현상이나 없는 현상이 그것에 문슨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 모이면 나타나 있는 것이고, 인연이 흩어지면 멸하며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있고 없는 것은 인연에 따라 나타난 현상으로 그것은 부질없는 것이고 덧없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제행무상인 것이다. 인연의 현상은 결국 무상한 것이다.

  그러기에 불교에서는 있는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없는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있고 없는 것은 인연에 따라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있는 것만을 실상(진리)으로 볼 수도 없고 또 없는 것만을 실상(진리)으로 볼 수도 없다. 그러니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모두 초월해서 자유자재하는 것이 중도인 것이다. 불교는 유심론도 아니고, 무심론도 아니다. 연기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바로 연기론이고 중도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