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능인원) 2022. 8. 15. 20:56

  물한계곡은 물이 차다는 한천마을 상류에서부터 약 20㎞를 흐르는 깊은 계곡이다. 삼도봉(1,176m)·석기봉·각호산(1,176m)·민주지산(1,242m)에 둘러싸여 있으며, 원시림을 보존하고 있어 곳곳에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는 손꼽히는 생태관광지이다. 황룡사에서부터 용소(일명 무지개 소)에 이르는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물한리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은 옥소 폭포·의용골 폭포·음주암 폭포·장군바위 등 폭포와 소(沼)·숲이 어우러져 있어 등산객과 피서객으로 사계절 붐비는 곳이다. 매년 10월 10일이면 충청북도, 경상북도, 전라북도의 3도 만남의 날 행사가 삼도봉에서 열리고 있다.

 

  삼도봉 아래 물한리 계곡은 유난히 물이 맑고 찬 곳이다. 특히 그 장쾌한 물소리는 세속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말끔히 씻어준다. 연산군의 폭정 시 이곳에 살았던 벽계정심 선사가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벽계정심 선사가 사는 오두막은 늘 비어 있었고, 조그만 바위샘에서 맑은 물방울만 똑똑 떨어질 뿐이 늘 남는 것은 아쉬움뿐. 그리고 떠오르는 단 한 마디의 말 무정설법(無情說法)!

  중세 조선시대 연산군의 불교탄압은 참혹, 그 자체였다. 벽계정심 선사도 속인으로 변복하고 삼도봉의 물한리 계곡에 은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간절히 도를 구했던 지엄이 정심 선사를 찾아왔다. 그러나 정심 선사는 지엄을 머슴처럼 부려먹기만 했다. 몇 년이나 힘든 일을 해내면서 '도는 무엇입니까?'라고 무수히 물어보았으나, 법문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마침내 지엄은 행장을 꾸리고 정심 선사를 하직할 수밖에 없었다. 험한 산길을 얼마나 내려갔을까. 정심 선사가 고갯마루에 서서 큰소리로 부르는 것이었다.

  "지엄아, 지엄아, 여기를 보아라." 정심 선사는 뒤돌아보는 지엄에게 외쳤다. "내가 밭을 매라는 것도 설법이었고, 나무를 해오라 한 것, 밥을 지으라 한 것, 이 모두가 가르침이었는데, 네가 그것을 몰랐다니 오늘이라도 법을 받아라." 그리고는 빈주먹을 내밀어 보였다. 그 순간 지엄은 확철대오하였다.

  폭풍 속의 촛불처럼 위태롭던 조선의 불교는 바로 이 빈주먹에서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심인(心印)의 가르침은 지금까지 이 땅에서 왕성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미디어 조계사에서 인용(http://news.jogyesa.kr)

원시림이 잘 보전된 곳이다.

물한계곡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다 보면 이러한 크고 작은 소와 폭포가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