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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빈 그릇으로 명상하다

산울림(능인원) 2011. 4. 13. 18:35

     

    물은 가을 물이 맑다.
    사계절 중에서 가장 맑다.
    개울가에 물을 길러 나갔다가
    맑게 흐르는 물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이 개울물에서 세월을 읽는다.

    가을 물이 맑다고 했는데 사람은 어느 때 가장 맑을까?
    산에서 사는 사람들은 가을에 귀가 밝다.
    이 말이 무슨 소리인가 하면
    가을바람에 감성의 줄이 팽팽해져서
    창밖의 곤충이 기어가는 소리까지도 다 잡힌다.
    다람쥐가 겨우살이 준비를 하느라고
    상수리나무에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오관이 온통 귀가 된다.

    대상과 하나 될 때 사람은 맑아진다.
    너와 나의 간격이 사라져 하나가 될 때 사람은 투명해진다.

    이 가을 들어 나는 빈 그릇으로 명상을 하고 있다.
    서쪽 창문아래 조그만 항아리와 과반을 두고
    벽에 기대서 이만치서 바라본다.
    항아리는 언젠가 보원요 지헌님한테서 얻어 온 것인데,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낸 그릇이라 그 연한 갈색이 아주 천연스럽다.
    창호에 비껴드는 햇살에 따라 빛의 변화가 있어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며칠 전에 항아리에 들꽃을 꽂아 보았더니
    항아리가 싫어하는 내색을 보였다.
    빈 항아리라야 무한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백자로 된 과반은 팔모 받침에 네모 판으로 된 것인데
    가로 한자 두 치, 세로 한 자의 크기.
    과반치고는 크다.
    이 역시 빈 채로 더 듬직하고 아름답다.

    텅 빈 항아리와 아무 것도 오려 있지 않은 빈 과반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라보는 내 마음도 어느새 텅 비게 된다.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엇을 채웠을 때보다 비웠을 때의 이 충만감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하던가.
    텅 빈 충만의 경지다

    빈 그릇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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