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의 겨울(삿포로를 뒤로하면서)
삿포로의 겨울은 정말 매섭다. 그래서 추위와 눈의 고장이라고들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우리가북해도를 여행하는 동안은 눈이 오거나 굿은 날씨는 없었다. 참으로 다행 스럽다고 생각했으나, 북해도는 한해 겨울이 끝나려면 20m의 눈이 내려야만 된단다. 북해도에 눈이 없다면 이토록 많은 관광객들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삿포로는 아이누어로 "사 포로(건조하고 큰)"에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사리 포로 펫(습원이 넓은 강)"아라는 설도 있다. 막부 말기까지의 삿포로는 아이누와의 교역지역이었으며 1869년 훗카이도로 개칭되어 훗카이도의 행정과 개척을 맡을 관리가 파견 되었고 삿포로의 관청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홋카이도 개척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마 요시타케는 마루야마의 언덕에 올라서서 시가지 조성을구상을 하였다고 하며, 교토 등을 모방한 계획도시로 정비되어 합리적인 바둑판 눈금모양의 거리는지금도 삿포로의 대명사다. 메이지시대 초기에 홋카이도의 개척과 경비 등을 위해 농병을 둔 후로는감자와 양파 등의 산지로 변모하였으며, 철도가 놓여지고 맥주, 제분, 제지 등의 산업이 발전하게 되면서 홋카이도의 정치 및 경제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1970년에는 인구가 100만을돌파하였고, 1972년에는 일본 최북단의 정령지정도시가 되었고 동계올림픽 개최지 이기도 하다.
1950년에 시작한 “삿포로 눈축제”와 1992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요시코이 소찬축제”, 2014년에는 “삿포로 국제예술제 2014”가 개최되는 등 최근에는 관광도시로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모으고 있는 곳이다.
삿포로 팩토리는 일본 최초로 맥주를 만들었던 역사가 있는 곳으로 1875년 훗카이도현의 정부기관이었던 카이타쿠시는 도쿄 아오야마의 공원에 양조장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는데 독일에서양조기술을 배웠던 시이배이 나카가와는 아오야마의 관리자인 히사나리 무라하시와 함께이 정원내에 카이타쿠시 양조장의 최고기술자로 임명되었다.
나카가와는 충분한 양의 얼음이 독일양조방식으로 맥주를 양조하는데 필요하다고 배웠으므로 무라하시에게 정부에 훗카이도로 양조장의 위치를 바꾸도록 요청하게 만든다. 그의 청원이받아 들여져서 1876년 9월 23일 캉타쿠시 양조장이 도쿄가 아니라 현재의 삿포로팩토리에 준공하게된다. 개업당시의 맥주통을 건물앞에 쌓아 올렸는데 이 맥주통들은 현재 복원되어 삿포로 맺주박물관 바닥에 놓여 있다. 양조장 건물은 처음에 목재로 만들어졌으나, 나중에 삿포로에서 만든 맥주가 일본전국에 알려짐에 따라 빨간벽돌로 확장 축조 된다.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사실은 나카가와가 독일 뿐만이 아니라 영국에서도 맥주 양조기술을 배웠다고여직원이 소개를 했는데 사실인지는 입증할 수 는 없었다.
이 여인이 25세때에 맥주 광고 모델을 했었는데 그후 45세때에 다시 맥주 모델로 선정된광고다 젊었을 때의 미모나 중년의 중후한 미모가 너무나 아름답다. 광고도 일본인답게 뿌리를 이어가는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
아무튼 이번 여행은 삿포로의 맥주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된 계기가 되었고 더욱이 맥주 맛을 좌우하는것이 따르는 기술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겨울의 쌀쌀함과 애리도록 시린 추위가 무엇인지도알게 되었고 더욱이 우리 모임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게도 만들었다.
강하고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는 가이드 현경수씨의 모두투어에 대한 애착심에서 애사정신이 무엇인지? 우리나라 모든 젊은 사람들이 이처럼 투철한 직업의식이 있을 까? 하는 반문도 해본다.이 번이 두 번째인 북해도 여행이지만 다시 또 북해도를 찾겠다는 마음도 가슴 한가운데에 남아 있다.다음에는 쇄빙선을 타고 유빙의 모습도 보고 싶고.... 노보리벳츠의 따뜨한 온천물도 그립다.아내의 가슴처럼 따뜻한 마음이 우러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