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능인원) 2013. 10. 27. 21:06

나고야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광광지가 바라 나고야성이다. 나고야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축성한 것으로 1612년에 완성 되었으며, 국유화하기 이전인 메이지 시대 전까지만 하여도도쿠가와 집안이 대물림하며 살아온 곳이 였으나. 1945년 미군의 공습으로 소실 되었단다.

 

나고야 성은 세키가하라 전투(關ヶ原合戰)후 에도막부를 창건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도카이도(東海通) 요소와 오사카(大坂, 현재의 大阪) 쪽에 대한 방비를 목적으로, 기요스(淸須,현재의 기요스시)로부터 나고야로 이주할 것을 결정하였고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마에다 토시미쓰(前田利光) 등 북국과 서국의 다이묘 20여명을 명하여 천수각(天守閣)과 망루의 공사를 진행하게 하여 게이초(慶長) 17년(1612)에 거의 완성된 평지에 건축된 대표적인 성이다. 그후 메이지 유신을 맞이할 때까지 나고야 성은 도쿠가와 고산케 (御三家)의 후손인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이 거주한 성으로서 번영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 1945년 5월 나고야 공습시 대천수각, 소천수각, 혼마루어전(本丸御殿)을 비롯해 건물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다행히도 소실을 면한 3개의 야구라(서북, 서남, 동남의 망루), 3개의 문(오모테니 노문(表之二門), 구 니노마루 히가시 니노문(舊二之丸東二之門), 니노마루 오테 니노문(二之丸大 手二之門)), 혼마루어전 장벽화의 대부분은 중요문화재로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전후 14년 뒤인 1959년에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외관은 과거의 위용을그대로 지녔으며 소실 되었던 사리포코도 재현해 놓았다. 덴슈가쿠 천수각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전망대가 있는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가 올가도록설치하여 노약자들이 이용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성을 둘러싼 넓은 공원에는 2천여 그루의 벚나무가 있어 매년 봄마다 아름다운 벚 꽃을 감상 할 수 있으며 1층부터 5층까지는 미군의 공습시 발생한 화재로부터 구해낸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7층은 전망대로 사용하고있다. 이곳에는 1,047점의 문화재 및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나고야 성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긴샤치이다. 성의 용마루에 샤치를 장식하게 된 것은 무로마치 (室町) 시대의 전기, 성곽형태가 완성된 무렵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기원의 의미에서 시작 되었으나, 후에는 성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마루로 장식하게 되었다. 긴샤치는 오와리 나고야의 상징으로 쇼와(昭和) 시대까지 전승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제2차 세계 대전의 공습시 천수각과 함께 소실되었다. 그리고 1959년 10월 천수각과 함께 재건되었다.

그 모습을 현재 볼 수 있게 되었단다. 물고기 모양의 이 사진이 바로 긴샤치이다.

 

 

 

 

 

 

 

 

 

 

 

 

 

 

 

 

 

 

 

 

 

 

 

 

 

 

 

 

 

 

 

 

 

 

 

 

 

 

 

 

 

 

 

 

 

 

 

 

 

 

 

 

 

 

 

 

 

 

 

 

 

 

 

 

 

 

 

 

 

 

 

일본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세가지 종류의 신기가 있는데 그 신기의 하나인 쿠사나기의 검을 위패로 하는 이세신궁에 이은 대궁으로 일본인들이 매년 1,000만 명에 가까운 참배객이 방문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