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화두선을 하라 하는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위빠사나, 마음 수련법, 아바타, 단학(丹學), 기공 등
간화선(看話禪) 이외의 제3의 수행법을 좇아 헤매고 있습니다.
비록 참선이 다른 수행방법에 비해 가장 간편한 방도라 할 수는 있으나
실제의 과정은 어느 수행방법 못지 않게 어려운 게 사실이어서
재가신자들 뿐만 아니라 스님들조차도 간화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다른 수행법에 빠져 있는 사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님들 가운데에서도 극소수만이 깨달음을 얻으신 것도 사실이고,
더더군다나 재가신도분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다른 수행법을 논하기 이전에
수행(修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적은가?
이것은 수행방법의 문제가 아닌가?」,
「간화선은 스님들이나 하는 것이지
재가신자들에게는 어려운 수행법이야.」
하고들 생각을 많이 하는데,
역대 선지식들은 그렇게 생각하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수행법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안한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이 공부는 반드시 성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장스님께서도 이 점에 대해서 누누이 말씀하고 계신데
그것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저 “참선은 어려워”,
“나 같은 하근기가 할 것이 아니야”하면서
시작도 제대로 안하고
지레 패배감에 자신을 몰아 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이 공부는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열심히 하면 사마외도(邪魔外道)가 되기 십상이고,
올바른 방법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공부가 성취될 리 만무하겠지요.
『믿음이 시원찮으니까 공부가 안되는 것이지,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만 하면 분명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수행해 나간다면
이 공부는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고
원장스님께서 법문으로 말씀하십니다.
<원장스님(=송담스님)의 85년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 中에서>
수행을 해 나가면서
앞선 수행자들이 걸었던 그 길을 자기 자신도 걷고 있음을 확인할 때,
그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 내가 이 길을 분명히 똑바로 가고 있고,
열심히만 하면 분명 깨달음에 이르를 수 있다는 확신이 섰을 때의
그 감동과 희열!
그것은 수행을 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런 것도 없이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어렵다”, “하근기다”하는 패배감에 휩싸이게 되니까
중도에 그만두게 되고 다른 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왜 빨리 깨달아야 합니까?
깨달아서 어서어서 광도중생 하겠다고요?
그런 생각을 갖는 한 이 공부는 진취도 없고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구(求)하는 마음을 갖기 때문에
빨리 깨달을 수 있는 다른 수행법은 없는가 하고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02년 1월 14일에 있었던 조실스님 제 27주기 추모재에서
원장스님께서 제3수행법 등에 대한 법문을 직접적으로 하셨습니다.
『제3수행법 등은 자꾸 해 가다보면
얻어지는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고, 공부에 진취가 있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어서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활구참선법은 처음부터 구경의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보이는 것이 있을 수가 없고, 얻어지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얻어지는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도(邪道)라고
부처님께서 엄격하게 규정하셨고, 역대 조사도 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원장스님께서
세등선원(№46 : 계해년 하안거 해제)에서 하신 법문에 의하면
『생사대사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직 화두다.
앞으로 부처님과 같은 대 성현이 나오셔서
우리 중생에게 알맞는 새로운 법을 설한다면 몰라도
현재까지는 이 보다 더 우리 중생의 번뇌 망상을 끊어서
참 나를 깨닫게 하는 묘한 법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 원장스님께서는
『간화선(看話禪) 외에 다른 수행법이 많지만
부처님이나 달마대사와 같은 대종장(大宗匠)이 나와서
우리 중생들의 근기에 맞는 새로운 수행법을 만들지 않는 한
간화선이 현재로서는 가장 수승한 수행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조실스님과 원장스님의 법을 믿고 배우는 참선학자들은
빨리 깨닫기만 바라지말고,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합니다.
견성, 혹은 깨달음은 그 이후의 문제이며,
그것은 시절인연이 도래해야 오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많이 하신 구참(久參)스님 중에는
"견성은 시절인연이 도래해야 오는 것이고,
금생에는 득력(得力 :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지는 경계)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참으로 진솔한 수행자의 마음자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속효심(速效心)으로 빨리 깨달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내게 되니,
답답하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정통적인 간화선(看話禪)은
고리타분하고 캐캐 묵은 수행법이라고 장롱 속에 처박아 놓고
새로운 수행법들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제3의 수행법들을 결코 폄하할 생각도 없고,
또 그 나름의 그 무엇이 있으리라고 생각은 듭니다만,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들어가서는,
기존의 정통적인 수행법과는 다르게
공부해 들어가는 진취가 보이니
이것이야말로 현대에 맞는 수행법이라고 모두들 달려들었다가,
나중에는 서서히 그 폐해를 확인하고
물러서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인의 말씀에
"만약 능히 신심만 물러서지 않는다면 누가 견성성불을 못하리요
(若能信心不退 誰不見性成佛)."라고 하셨습니다.
열심히 정진하시고 퇴전(退轉)치 않도록
신심을 가꾸어 나가시기를 기원 드리겠습니다.
(출처-송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