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다가올 앞날의 불확실성 궁금증을 풀어보는 사주팔자 풀이
몇 십 년 지나 돌아보면 사주팔자대로 살았다는 사람은 없다.
대충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엉터리 같기도 하다.
남의 앞날을 잘 본다는 곳에 가면
지나간 일은 잘 맞추는데 앞날은 글쎄요?
지난일이야 이것저것 물어보며 심리전으로 끌고 가면
정확하게 답이 나오고 거기에 매혹되고 빠져 들어가기 마련이다.
내가 걸어온 사주 여러 가지 정황에 비추어 보면
그때는 왜 그러했는지 대충은 이해가 간다.
그렇지 않았으면 더 좋게도 나쁘게도 될 수 있었는데
그것을 누가 알랴 그래서 사주팔자라고 하나보다.
뒤집어 말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
나의 범주 틀 속에 갇혀 살아 왔기 때문이다.
내가 그러했는데 뭐를 더 바라는가.
지금 주변의 역학관계는 나의 역량과 무관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큰 불행을 당하면 어떻게 설명할 방법도 없다.
이럴 때 업장 업보 전생을 찾으면서 흔히들 사주팔자를 탓한다.
자질구레 심란한 마음은 엉뚱한 처방으로 마음을 달래 보려고 하는 심산일 것이다.
냉은 냉으로 고친다고 마음은 심지가 굳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사주(운명)는 타고난 것일까? 만들어 가는 것일까?
어떠하든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살아야 되는데
달리 어떠한 방도는 없는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은 사건 하나하나에 일비일희하며 끌려가고
종교시설을 비롯하여 점집, 운명철학관 기타 등등
과학이 날로 발전하지만 아직도 이런 곳엔 북새통을 이룬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위에 내 사주 올려놓으면
거기에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딱 맞아 떨어지는데
무엇을 더 얻어 내려고 가는지
엉뚱한 모험을 하면 팔자 고칠 일 있냐며 핀잔을 듣는다.
그 소리 들으려고 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팔자 고치려고 여러 번 시집가더라도
살아가는 모습은 전이나 후나 현재나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 생활이 어떠하든 사주팔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 생활위에 그냥 덮씌워진 것이 사주팔자이다.
살다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이다.
속상해서 속이 뒤 접혀질 땐 물불을 안 가리고
부부간 부모자식간 친인척간에도 칼부림 일어나 원수가 되기도 하며
제 속 못 이겨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자도 있다.
단편적인 곁가지 하나만 떼어서 내 기준 나의잣대로 보면
나도 세상도 답답하고 모두가 원망스럽다.
이것을 업장 업보 운명타령하며
사주팔자로 돌린다면 너무 안이한 변명이 아닐까.
참고 견디면서 힘든 고개 잘 넘기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속상하고 원망스런 것은 나 자신이다.
뭐를 피하면 뭐를 만난다고 더 큰 불행은 생각 못하고
평시에 좋은 일 행운만 꿈꾸며 살아온 것 같다.
이래저래 넘어가고 돌아가다 보면 행운도 불운도 한 세상 돌아서 간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산이 높은데
남들은 잘 모르지만 나의 골 나의 산은 스스로 너무 잘 안다.
그런데 무슨산 무슨골을 찾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전생의 업보 타령 말고 현생의 업보나 잘 관리 하면 된다.
성철스님은 이 세상 떠나면서
남녀 무리를 속인 죄 문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했는데
그 동안 무엇을 그렇게 속였단 말인가.
그 겸손 가르침 조금이라도 깨우쳤다면 사주가 달라졌겠지만
한치 앞 내 앞길도 모르는데 누구에게 무엇을 내세우려고 하는지.
이런 저런 상황을 내 걸어온 길에 비추어 보면
뭔가는 와 닿는 느낌이 올 것이다.
그 느낌을 잘 간추리면 사주가 풀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