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업을 선업으로 바꾸는 것이 수행(암도스님)
악업을 선업으로 바꾸는 것이 수행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길 바라고 복을 짓고 누리기를 원합니다.
이는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축복을 주고 행복을 주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큰 행복은 부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누구십니까. 중생들의 아픈 곳을 부드럽게 잘 처리해주니
부처님입니다. 보살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살도 시부모, 남편, 자식들을
보살피고 모든 중생을 두루 보살피니 보살이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부처님 중 최고의 부처님은 누구일까요. 최고 부처님의 이야기는 속된 말로
‘대방경(?)’에 자세히 나옵니다. 다름 아닌 〈대방광불화엄경〉에 나오는
비로자나부처님입니다. 비로자나불은 각황(覺皇)이라고도 표현되는데 깨달음
중에서도 황제라는 뜻입니다.
한 때 서울 종로의 조계사를 각황사로 했었고, 지금도 화엄사에 가면 각황전이
있습니다. 하느님 중에서도 가장 큰 하느님이 각황입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하느님이 하나라는 것은 잘못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삼천대천세계는 모두
구획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도리천, 도솔천, 야마천, 타화천 등등. 따라서 각
하늘의 주인공도 다릅니다. 나라별로도 중국의 하느님은 옥황상제, 인도의
하느님은 인드라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여호아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하나라는 주장만큼 촌스런 주장도 없습니다. 왜 하늘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우리는 땅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대우주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보통 태양계 정도가 우주라고 생각하지만 은하계만 해도 100여개가
넘습니다. 그런거 보면 부처님은 과학이전 분인데도 어떻게 천문학을 하셨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불자들이 긍지를 가질 만 합니다. 10가지 선업을 쌓아 마음 편해져야 행복 우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업(業)을 짊어지고 살아오는데 업을 뒤집어야 합니다. 업이
잘못되면 업견이라 말하는데 견해가 정신세계를 좌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탱화점안식 때 솔가지로 뿌린 물은 사람에게는 음료수이지만 귀신은 불로 보입니다.
물고기는 물을 인식하지 못하고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사람이 공기를 의식 못하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천신은 물을 유리로 봅니다. 그래서 물위를 걷기도 합니다. 달마대사나
예수정도 되면 물위를 걸어 다닙니다. 왜 그럴까요. 업에 따라 생각 차가 달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업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업은 본래 까르마(Karma)인데 중국말로 갈마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갈무리라 말합니다.
갈무리는 요새말로 생명의 원동력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원초적
본능’인 겁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업입니다. 농사지으면 농업, 장사하면 상업, 공부하면 학업,
가르치면 수업, 사무실 열면 개업, 공부를 마치면 졸업, 쉬면 휴업, 그만두면 폐업,
일 벌리면 사업, 크게 벌리면 기업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사 업이 안 들어가면
말이 안 됩니다.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것을 본업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부모를 만나야 가능합니다.
다른 말로 유업이요 요새말로 유전인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도 인연 따라 다릅니다.
인연이 나쁘면 악업이요 좋으면 선업,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무기업이지요. 그래서
업보가 생깁니다. 먹는 것만 밝히면 아귀가 된다고 합니다.
선업을 지어야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면 사람 같은 일을 해야 합니다. 아수라를
만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천신이 되는 이도 있습니다. 선업을 많이 쌓으십시오.
선업은 윤회와도 연결됩니다. 윤회를 안 하려면 어찌 해야 하겠습니까. 살아
생전에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청정하게 하면 됩니다.
몸은 본래 타고나기를 악업을 짓도록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살생본능이 있지요.
여러분은 살생을 안하고 사는 것 같지만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는 많은 살아있는
것들이 있고, 마시는 물 한 모금에도 한량없이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도 몇 억분의 경쟁과 살생을 통해 태어난 겁니다.
백천만겁 난조우가 따로 없습니다. 도적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해보면 스릴
있고 재미있는 것이 도적질이지요. 여기 도적질 안해 본 사람 있나요? 결혼하면
여자들은 친정에서 뭐든지 가져가려하고 남자는 호주이름을 바꿉니다. 음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악구, 기어 등 10악업을 짓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업장을 녹이고 싶으면 모든 악업을 참회해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일 수행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살생중죄 금일참회, 투도중죄 금일참회, 사음중죄
금일참회, 망어중죄 금일참회, 기어중죄 금일참회, 양설중죄 금일참회, 악구중죄
금일참회, 탐애중죄 금일참회, 진에중죄 금일참회, 치암중죄 금일참회 등 참회하기를
쉬지 말아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를 지키고 본능을 억제해야 합니다. 악업은 통제해서 뒤집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승불교 정신입니다. 소승불교는 뭐든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대승은 다릅니다. 살생은 하되 안하면서 인간방생 등 자비방생에 치중하는 것이며,
도적질도 선한 도적질은 하되 근면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합니다.
음행도 해서는 안되지만 정식으로 결혼해서 허가받은 이와 정음은 가능합니다.
망어하지 말고 진어하시며, 양설하지 말고 정어 하십시오. 그래야 정론이 통해서
우리사회가 맑아질 것입니다. 악구하지 말고 애어로 바꾸십시요. 이빨을 깨물지
말고 입술로 부드럽게 말하십시요. 기어하지말고 실어(實語)하십시요.
부부간에는 이실직고해야 합니다. 탐욕 버리고 보시 많이 하십시요. 화내지 말고
자비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자비는 말로만 해서도 안됩니다. 자비 보시는 늘 붙어
다니는 말인데 보시는 조건이 붙어서는 안됩니다. 진리는 먼 구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현장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것은 뒤집어 지혜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도피하면 안됩니다.
‘10악업’을 ‘10선업’으로 하는 것이 대승보살도이자 십선운동입니다. 이제 불자
분들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며 오직 이곳에 와서 신행생활을
하십시오. 참선은 몸과 마음의 업을 활활 태울 것이요, 염불은 여러분의 업을
녹일 것입니다. 정진 많이 해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